사진은 정직하지 않았다… ‘제국의 렌즈’

입력 2010-04-01 17:52


제국의 렌즈/이경민/산책자

사진은 피사체를 담은 거울이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그 대상과 시대를 들여다본다. 사진은 대상을 그대로 비춘 것이기 때문에 정직한 매체로 인식된다. 그러나 사진평론과 전시, 출판 등의 일을 해 온 이경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이 같은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제국의 렌즈’에서 사진은 대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구한말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르는 시기 우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뒤에는 사진의 투명성에 기대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주체가 숨어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일제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사진을 현실 정치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이미지 메이커이자 표상 전략가였다. 그는 일본인 사진사들을 동원해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열등국이란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고종과 순종의 어진(御眞·왕의 얼굴을 찍은 사진), 순행 사진, 기념 사진, 국장 사진 등 다양한 국가 공식 사진을 통해 조선의 이미지를 일제의 의도대로 왜곡시켜 간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가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 이토 통감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은 촬영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사진이다. 요시히토는 사진 속에서 앞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영친왕은 이토 통감과 함께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요시히토를 뺀 앞줄의 나머지 세 사람은 조금씩 앞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요시히토의 키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보이게 해 위엄있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일본인 사진사들이 촬영한 황실 사진 속에 고종은 대부분 일본식 복장을 한 어설픈 ‘식민지 군주’로 비쳐진다. 순종 황제는 국권을 상실한 ‘이왕’, 황태자 영친왕은 ‘식민지 태자’이자 ‘황국 군인’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1907년 순종 등극 이후 고종과 순종, 영친왕 등은 일본의 육군 복장 차림으로 사진을 촬영해야 했다.

일제는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식민지 이전과 이후 조선의 변화상을 비교하는 사진자료 등을 잡지나 신문, 자료집 등에 실었다.

당시 일본의 인류학자 토리이 류조의 사진도 조선인은 원시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토리이 류조는 이를 위해 백정이나 무당과 같은 계층의 인물을 일부러 촬영 대상에 자주 등장시켰다고 한다.

일본인들 뿐아니라 근대 초기 조선을 방문한 서구인들이 촬영했거나 수집한 사진들도 ‘그들의 창’으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이었다. 1892년부터 3년 동안 서울에 주재했던 프랑스 대표 이폴리트 프랑뎅이 남긴 2권의 사진첩에 담긴 사진은 조선의 원시성과 야만성, 비위생을 강조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을 프랑스의 세련됨과 비교하면서 미개하고 열등한 민족으로 그렸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1906∼07년 한국을 방문한 주일 독일대사관 무관 헤르만 잔더의 사진에서도 조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드러나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역사가 사가(史家)의 사료에 대한 해석이듯이 사진도 촬영자의 현실에 대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는 책 말미에 실린 보론에서 “사진은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대의 거울”이라면서 “사진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가 시급하며 그것을 위한 사진 아카이브(archives·공문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건 또는 그런 것을 보관하는 장소)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