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서 보는 바다 … 저리 고왔는데 천안함 전역 수병의 회고

입력 2010-04-01 19:28


출항도, 귀항도 군함에는 정해진 게 없다. 명령이 떨어지면 바다로 나가고, 돌아오는 것도 명령에 따를 뿐이다. 바다의 경계병 초계함은 특히 그렇다. 짧으면 열흘, 길면 20일 대강의 스케줄이 있지만 그 바다를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귀항 시기는 전적으로 교대 함정이 언제 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출항 때 항상 넉넉히 한 달 치 부식을 싣는다.

군함에선 하루 네 번 먹는다. 24시간 교대 근무가 끝없이 반복돼 육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5시에 세 끼를 먹고 나면 밤 10시 밤참이 있다. 출항 12일째인 지난달 26일 저녁, 해군 제2함대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의 시계는 밤참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선실에서 식사를 기다리던 부사관과 병사들은 음식도, 귀항 명령도 받지 못했다.

군함을 탄다는 것,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의 수병(水兵)이 된다는 것, 무력충돌이 발생했던 긴장의 바다를 주야로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천안함 전역자들과 부대 관계자들의 회고와 증언을 토대로 한 ‘수병 24시’다.

실종자 중 10명은 ‘앵카’

지난 29일 경기도 평택시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박찬선(29)씨는 2년간 천안함을 타고 2003년 병장으로 제대한 뒤 평택의 일본계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음식점 TV에선 천안함 침몰 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밤참은 선택 사항이에요. 밤 9시30분 전후면 밤참 먹을 사람들은 사병식당에 모여들죠. 아마 (사고 당시에도) 1층 함미 쪽 사병식당에 (수병들이) 많이 있었을 거예요.”

박씨가 이 말을 할 때 TV에서 천안함 반파 상황을 재구성한 그래픽이 나왔다. “아… 사병식당도 잘려 나갔네….” 그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배 타는 게 좋아 이등병 때부터 병장 때까지 군함에서 생활한 이들을 수병들은 ‘앵카(앵커·anchor·닻)’라고 부른다. 박씨도 앵카였다. “실종자 46명 중 상병 이상 병(兵)이 10명이던데, 그들은 다 앵카라고 봐야죠.”

군함 생활은 땅 대신 철판을 밟고 지낸다. 그 철판조차 매우 좁고 항상 파도에 흔들린다. 근무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요란한 엔진음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의 생활보다 전투와 작전을 위해 설계된 공간에 적응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승조원들을 자주 상담하는 2함대 사령부 관계자는 배 타는 해군 사병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배 타는 것’이라고 했다. “승선 경험이 많은 부사관들도 잠시 육상 근무하다 다시 배 타면 멀미를 할 정도에요. 전입한 지 얼마 안 된 사병들은 오죽하겠어요. 이번 사고 때도 한 이등병이 목욕하다 선임병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잖아요. 배에 익숙해지는 게 결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수병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한다. 박씨가 말을 이어갔다.

“배 타는 걸 못 견디는 이등병들은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기도 해요. 고참들이 항상 챙겨주고, 이등병은 혼자 갑판에 내보내지 않아요. 정치나 종교 얘기도 금기죠. 좁은 공간에서 다투면 안 되니까. 장교들과도 관계가 좋아서 사병이 삼촌이나 형처럼 많이 의지합니다. 하지만 기강은 센 편이에요. 함장 권력은 절대적이고요.”

전장 88m, 전폭 10m의 천안함은 지상 3개층, 지하 3개층 구조다. 지상 3층에 항해를 총괄하는 함교(조타실), 지상 2층에는 작전통제실과 함장실이 있다. 장교침실 장교식당 의무실 전산실 기관통제실(엔진 관리) 조리실 사병식당 등 주요 시설은 지상 1층에 몰려 있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많은 실종자가 발생한 부사관과 사병 침실(기관부 침실)은 지하 1층 함미 쪽, 식량창고와 탄약고는 지하 2층 함수 쪽, 연료탱크와 물탱크는 지하 3층에 있다.

이런 공간에서 병사들은 4시간 일하고 8시간 쉬는 일과를 반복한다. 오전 10시∼오후 2시 근무조라면 다음 근무는 8시간 뒤인 밤 10시∼다음날 오전 2시고, 다시 쉬었다가 오전 10시∼오후 2시 근무에 투입된다. 이렇게 3개조가 24시간 항해와 작전을 수행한다.

“업무는 5개 파트로 나뉘어요. 항해부 포술부 기관부 지원부 작전부. 저는 항해부였어요. 해양부라고도 하는데 항해에 관해 전반적인 사안을 준비하는 거죠. 함교에서 근무해요.”

항해부 근무 지점은 함교 부근이다. 망원경으로 바다를 살피고 갑판창고도 관할한다. 포술부는 탄약고와 유도탄을 책임지며 포 바로 아래 포실에서 주로 일한다. 기관부는 선체 유지·보수, 지원부는 전산·행정·보급·조리·이발, 작전부는 전파·음파 탐지와 통신을 담당한다. 박씨가 근무할 때는 전체 승조원이 보통 130명이었다. 이번 사고 땐 104명이 타고 있었다.

근무조가 아니라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할 일이 많다. 선체에 붙은 녹을 떼어내고 페인트로 다시 칠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병사들은 끌로 철판 두들기는 소리에 빗대 이 작업을 ‘깡깡이’라 부른다. 매일 한 차례 소방 및 방수 훈련도 있다. 불시에 시작되며 30∼40분 정도 걸린다.

토요일 낮 12시부터 일요일까지 근무조 외에는 쉰다.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한다. 위성방송 덕에 TV도 볼 수 있다. 항해 방향에 따라 방송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박씨는 “수병들 사이에 오랜 우스개가 ‘축구 좋아하는 어떤 함장이 축구 중계 때 TV 나오는 방향에선 천천히 달리고, 반대 방향에선 전속력을 내더라’ 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서해 최전방 ○○구역

해군은 서해를 다섯 구역으로 나눠 지킨다. 초계함들은 맡은 구역에 머물며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 대개 각 구역의 북쪽 경계를 따라 좌우로 이동하며 순찰한다. 천안함 사고 지점은 2함대 사령부가 있는 평택항에서 가장 먼 ○○구역. 최대 속도 32노트(시속 60㎞)로 달려 서너 시간 걸리는 최전방이다.

작전부에서 통신 업무를 담당하다 2002년 10월 병장으로 제대한 강모(30)씨는 제2연평해전을 떠올렸다. “일단 경계 구역에 도달하면 귀항 때까지 똑같은 일상이 반복돼요. 담당 업무 하고, 작업하고.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이후 ‘상황’ 걸리는 일이 부쩍 많아졌어요. 근무도 빡빡해졌죠.”

제2연평해전 때 천안함은 경남 진해에서 정기 수리를 받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서해 작전구역을 벗어나는 기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교전으로 숨진 아군 6명 중 고(故) 박동혁(당시 21세) 병장이 있다.

“천안함 의무병이었어요. 고속정 참수리 357호로 옮긴 지 두 달 만에 그렇게 됐죠. 전투 중에 전우들 치료한다고 배 안을 돌아다니다가 피격됐는데, 그때 저도 엄청 울었어요.”

‘상황’이 걸린다는 건 함교에서 이런 명령이 떨어질 때를 말한다. “현재 시각 오후 ○○시, 위도 ○○도, 경도 ○○○도에 간첩선 추정 배 이동 중, 총원 전투 준비.”

식별되지 않은 배는 잠재적 적함, ‘간첩선’으로 간주된다. 이런 배가 레이더에 잡히면 무조건 비상벨이 울린다. 박씨도 “평균적으로 출항할 때마다 한 번씩은 상황이 걸렸다”고 말했다.

밀수선이나 중국 어선으로 밝혀져도 긴장은 계속된다. “조용히 근처까지 가서 서치라이트 비춘 뒤 그 배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아요. 그러면 파도가 넘실대서 통통배들이 움직이지 못해요. 그때 우리 함정을 접근시켜서 (상대편 배에) 밧줄을 거는데….”

위험한 순간은 이때다. 밧줄 한 끝을 함정에 묶은 채 상대 배에 다른 끝을 걸어야 한다. 순순히 응하면 다행이지만 대개 저항한다. 무기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항상 긴장된다.

상대방이 배를 몰아 도망치려 하면 위험이 더 커진다. 팽팽히 늘어났다 끊어져 함정을 향해 날아오는 밧줄에 맞으면 발목이 절단될 수도 있다. 이럴 땐 차라리 밧줄을 풀어버리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풀던 밧줄에 휘감기면 바다로 떨어진다.

북한군과 대면하기도 한다. 북한 어선이 엔진고장으로 표류하는 경우다. 인양해 북한 해군에 넘겨주는데, 절차상 대화가 오가면서도 긴장은 극에 달한다. 박씨는 천안함을 타며 이런 일을 두 번 겪었다고 했다.

최전방 바다의 밤은 칠흑 같다. 미세한 불빛이라도 새어나가면 적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일몰 후엔 모든 불빛을 차단하는 ‘등화관제’가 실시된다. 아무도 갑판에 나갈 수 없다.

“함교의 항해부 근무자들만 바깥 상황을 알 수 있어요. 등화관제 상황에서 (천안함 사고 때) 함 내 전기마저 끊겼다니까… 불을 꺼도 항상 비상등은 켜져 있는데 그것마저 나갔다면… 안 당해봐서 모르지만 자기 손바닥도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전역자 강씨)

등화관제 외에 승조원들이 배 안에 ‘갇혀’ 생활하는 경우는 파도가 4m를 넘을 때다. 이렇게 물살이 거세지면 인근 섬에 투묘(닻을 내리는 것)하고 대기한다. 이럴 때 갑판에는 “사람이 바람을 향해 몸을 60도 정도로 기울여야 넘어지지 않을 강풍이 분다”고 박씨는 묘사했다.




함미의 수병들

“뒤(사고 당시 천안함 함미)에 탄 수병들은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걸 보세요.” 한참 설명하던 박씨가 답답한 듯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함미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2개 있어요. 하나는 사병식당으로 통하고, 하나는 기관부 침실이 있는 맨 뒤쪽에서 바로 갑판으로 올라가는 수직계단이에요. 동강난 단면 부분으로 알려진 사병식당은 제일 먼저 침수됐을 테니 올라가도 소용이 없고, 수직계단은 바닷물에 의한 침식을 막느라 갑판으로 통하는 문을 막아두는 경우가 많아요.”

잘라진 함미가 수병들을 품은 채 가라앉았다면, 그들이 있는 공간은 바닷물의 침입을 막을 정도로 밀폐돼 있었을까. 박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잠그면 물은 (선실로) 들어오지 못해요. 그런데 문과 문틀 사이에 있는 고무가 과연 제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네요. 반찬 담는 밀폐용기를 생각하면 돼요. 고무가 성하지 않으면 공기가 스며들어 반찬이 상하잖아요. 제가 근무한 2년 동안 고무 정비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밀폐가 제대로 됐다면 산소가 남아 있었겠죠.”

충격에 밖으로 튕겨나간 수병이 있다면…. 강씨가 얘기한다. “선실 하나에 3층 침대 10개가 있어요. 30명이 함께 자죠. 비좁아서 구명조끼는 보통 따로 모아둬요. 각자 보관하는 게 아니라 보관함을 두고 한데 모아두는 거예요.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챙겨 입을 시간이 있었을지….” 해양경찰이 공개한 구조 당시 동영상에서 생존자 중에도 구명조끼를 입은 병사는 일부였다.

박씨는 그나마 휴대전화가 연결되는 해역이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먼 바다에서 작전할 때 보통 휴대전화가 잘 안 터지는데 섬 근처에 가면 터져요. 그럴 때면 모두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하곤 했죠. 휴대전화는 영외 하사(부대 밖에 거주하는 하사) 이상만 소지하고 사병들은 간부 전화를 빌려서 써요.” 천안함은 이례적으로 백령도 인근 해역에 있었다.

무선인식(RFID) 구명조끼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박씨의 목소리가 유독 높아졌다.

“제가 근무할 때부터 개인 표식 장치를 보급해달라는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 이걸 갖고 있으면 개인별로 음파를 발산해 위치가 추적돼요. 응급상황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바로 켜지죠. 미군은 다 갖고 있는데, 우린 훈련 때만 구형 표식 장비를 주고 정작 출동 땐 안 줘요. 서해 NLL 해역에서 항상 작전 중인 초계함이 4대, 수병들 다 해봐야 400명이니까, 400개만 있으면 되는데….”

◆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김덕규씨가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제목으로 지난 29일 올린 장문의 시(詩). 실종된 전우의 생환을 갈구하는 이 시는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편집자 주>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갈 때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평택=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