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 편견 부순 작은 거인의 ‘반란’… ‘광고천재 이제석’

입력 2010-04-01 17:37


이제석/학고재/광고천재 이제석

광고기획자 이제석(28·아래 사진)씨는 광고계의 기린아로 불린다. 서른도 안된 나이에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로 꼽히는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상, 광고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클리오 어워드 동상, 미국광고협회의 애디 어워드 금상을 비롯, 국제 광고제에서 40여개의 상을 거머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공 스토리와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법, 광고에 대한 생각, 직업 정신 등을 책으로 묶었다. 이른바 이제석이 쓴 이제석이다. 이씨는 국내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아니 그는 한때 ‘루저’였다. 의대에 진학한 형에게 밀려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만 그리며 시간을 죽였다. 중학교 때는 수업태도 불량으로 숱하게 얻어터졌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그림으로도 4년제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죽도록 그렸다. 400점 만점에 100점대이던 모의고사 점수가 막판에 300점을 넘겨 계명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4.5 만점에 4년 평점 4.47로 대학을 수석졸업을 했지만 지방 대학 출신인데다 공모전 수상경력도 없어서인지 금강기획, 제일기획 등 국내 광고회사들에게 번번히 문전박대를 당했다. 오라는 곳이 없어 동네에서 간판 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오기가 생겼다. 광고를 제대로 배워 세계 최고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 2006년 8월 가방 하나와 500달러만 달랑 들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편도 티켓만 끊었어요. 그 땐 잘 되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었죠.” 그는 그해 9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 편입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6개월 뒤부터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잇따라 입상하면서 성공신화를 써 내려갔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학연, 지연 등이 발목을 잡았지만 미국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의 광고는 편견과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로 통쾌한 반전을 일으키는 게 특징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흡인력이 있어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그런 광고들이다.

장애인을 위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뉴욕 지하철 계단을 에베레스트 사진과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라는 카피로 고발한 광고, ‘더 피우면 피울수록 생일잔치는 준다’는 미국 폐 건강협회 홍보물 종이성냥 광고 등이 그것들이다.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을 담은 포스터를 전봇대에 둥글게 붙여 총구가 다시 그 병사의 뒤통수를 겨누는 모습이 ‘뿌린대로 거둔다’는 카피(문구)와 함께 디자인 된 반전광고, 굴뚝을 권총의 총구로 묘사하고 ‘대기오염으로 한 해 6만 명이 사망합니다’란 카피를 붙인 광고는 그에게 광고제 수상과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들이다.

실력을 인정받은 이씨는 미국의 최대 광고회사 JWT 뉴욕, BBDO 등 대형 광고회사에 스카우트됐지만 자신만의 광고를 하기 위해 회사를 박차고 귀국했다. 그는 현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고인들과 연계해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광고는 소통이고 대화”라며 “돈(수익)에 얽매이지 않고 멋진 광고,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광고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고이고, 나쁜 광고는 거짓 약속을 한다거나 무의미한 소비를 부추기거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광고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 등의 공익성 광고에 관심이 많다. 적십자사, 사랑의열매, 월드비전 등의 광고기획을 돕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상업광고도 하고 있지만 아무리 바빠도 불우이웃 돕기, 헌혈 장려, 의식 개선,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등의 공익성 메시지가 담긴 광고에 70%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돈이 안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작업들은 그 자체가 재미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이씨는 “세상과 소통하는 행복한 광고를 만들고 싶다”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건실한 중소기업들에게 힘이 되는 광고,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광고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1만5000원.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