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기자동차 사업 진출하나

입력 2010-03-31 21:24


삼성그룹이 전기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전기차를 토대로 하이브리드차 등 차세대 자동차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삼성 측은 “검토한 바 없다”며 공식적으로는 부인했다. 하지만 삼성은 최근 계열사와 협력사를 통해 전기차 관련 전문 엔지니어 영입에 나섰다. 삼성의 전기차 시장 진출설을 뒷받침한다. 삼성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다면 2000년 르노에 삼성자동차를 매각한 이후 10년 만의 자동차 재도전이다.

업계 관계자는 31일 “삼성이 전기차 관련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전기차가 미래산업인 데다 삼성 측이 전기차의 핵심 기술인 배터리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삼성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쌍용차와 현대·기아차, GM대우 등 자동차 회사 출신 경력사원을 뽑고 있다. 쌍용차 고위 관계자는 “기술연구소의 전자·전기부문 기술자들을 삼성에서 데려갔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사업 가운데 자동차와 관련된 부문은 차량용 반도체, 에어컨 정도인데 차량용 반도체는 현대차와 공동 개발하고 있고 에어컨 사업부에선 인력을 뽑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일부러 자동차 인력만 뽑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분야의 인재 확보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전자의 오랜 협력업체로 휴대전화 배터리팩을 공급하는 이랜텍이 지난해부터 전기차 기반 기술 확보에 나선 것도 삼성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세용 이랜텍 대표는 삼성전자 우수 협력업체 모인인 협성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복귀와 맞물려 전기차 사업 진출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복제약)나 태양전지 등 현재까지 나온 신사업군(群)보다 규모와 시장성이 큰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전기차가 제격이라는 분석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은 차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가격 및 성능과 관련이 깊다. 획기적으로 성능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 배터리가 나오면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배터리 부분에서 삼성은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다.

삼성SDI는 2008년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업체인 독일 보쉬와 ‘SB리모티브’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SB리모티브는 아직 양산 체제에 돌입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BMW, 델파이 등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2015년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업계에선 이처럼 관련 기술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의 차 산업 진출설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삼성의 쌍용차 인수설이 제기됐었다. 당시엔 정부의 희망사항이기도 했고 낮은 진입 비용, 자체 기술력, 신수종 사업에 대한 의지 면에서 삼성이 욕심낼 만한 부분이 많다는 분석도 있었다.

특히 쌍용차 인수를 통한 승용차 진출설도 거론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과거 승용차 사업에 실패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실현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쌍용차 입찰은 이달부터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 해외 자동차 회사 등 3∼4개 투자자가 쌍용차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1995년 부정적인 여론 속에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가 외환위기를 맞고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보급에 소극적인 상황이고 다른 국내 전기차 업체들은 영세한 수준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 등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급격히 재편되는 중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독과점하는 국내 시장이 삼성과의 양강체제로 바뀐다면 바람직한 구도”라고 말했다.

천지우 최정욱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