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반군 포로 12년만에 가족 품으로… ‘생환 기적’뒤엔 아버지의 고행 있었다

입력 2010-03-31 18:22

몬카요 하사 석방 성사시킨 ‘눈물의 父情’

콜롬비아 플로렌시아 타맥 공항에 헬기 한 대가 착륙했다. 헬기 문이 열리면서 군복을 입은 30대 남자가 환한 미소를 띠며 땅에 내려섰다. 백발의 아버지가 흰 꽃을 든 채 다가갔고 둘은 뜨겁게 포옹했다. 12년간 아들을 기다려온 아버지의 양 팔목엔 여전히 무거운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콜롬비아 좌익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됐던 파블로 에밀리오 몬카요 하사가 30일 석방됐다. 영국 BBC방송은 이들의 만남을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몬카요 하사는 1997년 12월 21일 남부 산악지대 기지에서 FARC의 공격을 받아 인질로 잡혔다. 당시 그는 19세였고 계급은 병장이었다. FARC는 콜롬비아 정부 타도를 목표로 1964년 결성됐다.

시골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구스타보는 아들의 석방을 위해 나섰다. 2007년 6월 29일 반군이 포로를 묶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쇠사슬로 양 손목을 묶고 목에 두른 채 전국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그의 흰 셔츠엔 FARC에서 공개한 아들의 모습을 새겼다. 그리고 한 달간 1000㎞를 걸었다. 발은 물집이 잡히고 부르텄다.

구스타보의 고행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교착 상태의 포로 교환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콜롬비아 정부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프랑스 등 각국 정부에도 아들의 석방 지원을 탄원했다. 그의 행진으로 몬카요 하사의 억류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FARC의 신임을 받는 좌파 정치인 피에다드 코르도바 상원 의원이 나섰다.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 정부와 FARC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했다. 코르도바 의원은 FARC가 억류 중인 경찰과 군인을 교도소에 수감 중인 동료 게릴라들과 맞교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FARC는 몬카요 하사를 포함한 2명의 인질을 석방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브라질에서 국제적십자사 표시가 새겨진 헬기를 임차했다.

코르도바 의원과 적십자 관계자 등은 이날 콜롬비아 남부 정글에서 몬카요의 신병을 넘겨받았다. 아돌포 베테타 국제적십자사 대변인은 몬카요의 건강상태가 대체로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구스타보는 “아들을 기다리는 1시간이 1000시간 같았다”고 말했다. 몬카요는 “하나님과 아버지께 감사하다”며 “내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소회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