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미션-땅] 다툼이 있는 땅 기독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10-03-31 18:12
대천덕 신부·헨리 조지와 가상 대담
2년여 전 한 장관 후보가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면서 해괴한 논리를 펴 수많은 사람들을 격분시킨 적이 있다. 토지 소유는 정당한 경제행위인가 아니면 죄악인가.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는 이른바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ation)’를 주장, 레프 톨스토이와 쑨원 등에게는 물론 한국의 참여정부 부동산정책 입안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및 경제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회자된 바 있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아처 토레이(한국명 대천덕·1918∼2002) 신부는 기독교공동체 예수원을 설립하고 평생 기독교적인 토지정의를 주창하며 ‘조지주의’(Georgism, 헨리 조지가 주장한 토지가치세를 지지하는 입장) 확산에 기여했다. 헨리 조지, 대천덕 신부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토지정의와 기독인들의 자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 분만큼 평생 토지 문제를 풀기 위해 성경적 세계관과 학문간 조화를 추구하고 애쓴 분들이 많지 않은데.
◇헨리 조지=많은 사람들이 내가 빈자의 편에 서서 소득 재분배를 외치자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했었지. 내 주장은 경제활동의 자유와 자본의 사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와는 본질적으로 융화될 수 없는데도 말이야.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근본 원인은 분배의 정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네. 그런 점에서 난 지주가 토지가치를 독점한 게 빈곤의 제1원인이라고 판단했지.
◇대천덕=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 없이 해결될 수 없고,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네. 그런 점에서 땅의 문제는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문제지. 하나님의 법은 하나의 패키지네. 만일 우리가 그 가운데 한두 가지만 지킨다면 그에 해당하는 복을 받겠지만 지키지 못한 나머지 규정들로 인해 저주를 피할 수 없네.
-대 신부님은 헨리 조지 사상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선구자이신데.
◇대=우리 가족은 조지 대선배와 남다른 관계가 있네. 할아버지 R.A 토레이 1세가 미국 무디성경학교 교장 시절, 경제학에 관한 헨리 조지의 가르침이 옳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지. 그것은 할아버지가 지금도 널리 교재로 쓰이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What the Bible Teaches)’이라는 책을 출판하기 직전의 일이지. 난 조지 대선배의 책 ‘진보와 빈곤’을 읽고 그의 주장이 옳을 뿐 아니라 성경에 근거했음을 확신했었네. 이 책은 성경의 향기를 풍기는 위대한 고전이라네.
◇조지=40세 되던 1879년 빈곤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한 ‘진보와 빈곤’을 자비로 출판해야 했지. ‘토지가치세’만 남기고 다른 조세는 폐지하자는 ‘단일세(single tax)’를 주창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어. 이는 훗날 ‘조지주의 운동’으로 발전했지. 사회 진보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경제불황이 닥치는 이유를 생각해봤나. 토지사유제로 인해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라네. 정부는 지대를 징수해 최우선적인 세원으로 삼아야 한다네.
-성경은 토지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요.
◇대=그렇다네. 성경의 토지 기본법 요지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의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의 레위기 25장 23∼24절이지. 이는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 전제라네. 성경 어느 곳에도 이 원리가 폐지된 적이 없어.
◇조지=자본의 사유와 토지의 공유가 중요하지. 즉 노력에 의해 생산한 것에 대해선 생산자의 사유를 인정해 효율성을 달성하고, 사람의 노력과 무관하게 천부(하나님)로 받은 토지는 사유의 대상에서 제외해 형평성을 달성해야 하지.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되네. 토지를 공유한다고 해서 토지의 단독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의 토지 사상은 간단하고 명확하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공유의 자원이라는 것이지. 즉, 토지에는 ‘사적 소유권(right of private ownership)’은 없고 ‘보유권(right of possession)’은 있다네.
-‘진보와 빈곤’은 카를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의 저작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이 팔렸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하지만 토지사유제를 반대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요.
◇조지=정부가 토지에 과세하되 그 시장가치, 즉 지대 전액을 징수하고 다른 것에는 과세하지 말아야 한다네. 땅으로 얻는 불로소득엔 막대한 세금을 매겨야 해. 모든 생산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땀을 흘린 대가이지만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는 불로소득이야. 토지가치 단일세를 도입하면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오는 고질적 현상도 막을 수 있어. 물가상승의 일등공신은 부동산 가격이라네.
-토지 공유가 묘책이라면 왜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지 않았나요.
◇대=덴마크 호주 미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뉴질랜드 등에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네. 토지가치세 제도 때문에 이득을 얻지 못하는 유일한 집단이 있다면 대지주들이지. 토지가치세가 법으로 통과되면서 그들은 밤잠을 설쳐가면서 법을 바꿀 궁리를 했지. 덴마크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네. 조지주의 원리에 열광했던 덴마크에서 훌륭한 법률이 제정됐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지. 원하던 바를 얻었다고 안심한 덴마크 국민들이 마음을 놓아버렸어. 하지만 지주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 그들은 야금야금 법률을 개정해나갔지. 오늘날 덴마크에선 조지주의적 법률을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네.
-이사야 선지자가 살던 당시에도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있었는데요.
◇대=맞네. 늘어가는 무주택자들은 바로 그런 투기꾼들과 그런 자들을 인정해주는 경제정책의 희생자들이지. 부동산 투기꾼들은 차지할 공간이 없어질 때까지 땅을 수중에 넣으려 하지. 그런데 어디까지나 합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뤄진다는 거야.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지.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 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사 10:1∼3).
-진정 토지문제 해결책이 있나요.
◇조지=성경에서는 그 답이 너무나 분명한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게 문제지. 예수님은 무슨 돈(재물)이든지 땅에 투자하지(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투자하라고 말씀하셨지.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읽어보게. 난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사상도 이것과 일치한다고 굳게 믿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늘에 투자하는 방법이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 마태복음 25장 31∼46절이 그 답이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나. 우리는 실업자, 가난한 자, 무주택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일이 아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에 투자해야 해.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