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섬 삼학도… 그곳서 부른 ‘목포의 눈물’
입력 2010-03-31 17:31
철길이 끝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와 달리 종착역에는 철도종단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호남선의 철도종단점인 목포역은 다르다. 목포역 플랫폼에는 삼학도 석탄부두로 가는 철길이 샛길처럼 뻗어있다. 그 철길 옆에는 검은 석탄가루를 운명처럼 뒤집어쓰고 삼학도선과 함께 살아온 서민들의 질박한 삶이 침목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녹슨 철길이 끝나는 그곳에는 이난영이 애잔한 목소리로 구슬프게 불렀던 ‘목포의 눈물’ 속 ‘삼학도’가 되살아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목포의 이야기꾼 정호연(56)씨는 지난 3월 19일에 삼학도 호안 수로 통수식이 열리자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다. 택시기사이자 문화관광해설사인 그는 어린시절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던 삼학도로 건너가 백사장에서 놀곤 했다. 목포에서 태어나 자란 50대 이상의 장년층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추억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삼학도 외곽에 둑을 쌓고 바다를 매립해 육지가 되자 아련한 추억은 차가운 콘크리트 속에 묻혀버렸다.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상징적 존재였던 삼학도는 육지화가 되면서 순식간에 망가졌다. 목포 앞바다에 세 마리 학처럼 떠있던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는 매립용 토사를 대느라 깎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하던 대삼학도에는 제분공장의 거대한 사일로와 조선소 등이 흉물처럼 들어섰다.
뿐만이 아니다. 무인도였던 삼학도에 옐로하우스로 불리던 사창가까지 옮겨와 전설의 섬 삼학도에 먹칠을 했다. 석탄 등을 하역하는 부두가 만들어지자 1965년에는 석탄운송을 위해 호남선 지선인 2.5㎞ 길이의 삼학도선이 목포역과 대삼학도 사이에 놓였다. 이난영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삼학도는 이때부터 흘러간 옛 노래의 가사로 남아 목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흉물스런 인공구조물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요즘도 하루 한차례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다니는 삼학도선이 바로 그런 경우다. KTX 덕분에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고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밤새도록 달리던 운치는 사라졌지만 현대식 역사로 변신한 목포역에서 만나는 삼학도선에는 1970년대의 목포 풍경이 오롯이 남아 있다.
삼학도선은 기찻길 옆 주민들의 마당이자 놀이터로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철길 옆에는 1∼2m 거리를 두고 꽃집, 철물점, 슈퍼, 중국음식점, 소금상점, 연탄가게 등 허름한 상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할머니들이 철길 옆에서 봄나물을 다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린 손자는 냉이꽃이 한주먹씩 피어 있는 녹슨 철길을 놀이터로 삼는다.
목포역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삼학도행 화물열차가 느릿느릿 추억 속을 달린다. 깃발을 든 역무원이 기관차 선두에 타고 있다 자전거 등 방해물이 기차를 가로막으면 얼른 뛰어내려 치운다. 철길에 주차한 자동차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기차는 거친 숨을 내뿜으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기차가 올 때는 역무원들이 깃발을 흔들고 호루라기를 부는 등 난리가 나제. 언젠가는 기차가 다니는 줄 모르는 외지인이 차를 세워놓고 사라져 휴대전화로 연락하기도 했어. 여그 사는 사람들이야 기차가 언제 지나가는 지 아니까 미리미리 치우제.” 철길 옆에 의자를 내놓고 따스한 봄볕을 즐기던 어느 할머니의 말이다.
화물열차는 짧은 거리를 달려 부두로 들어가기 직전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있는 대삼학도의 난영공원을 스쳐지나간다. 난영공원은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를 불러 유명한 고 이난영씨의 수목장이 있는 곳.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나 17세에 가요계에 데뷔한 이난영은 1935년 ‘목포의 눈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한 이난영은 한국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김시스터즈’ 등 7남매를 세계적인 가수로 키워낸다. 자녀들이 미국으로 떠난 후 서울에서 홀로 살던 이난영은 4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다. 경기 파주 용미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이난영이 삼학도로 돌아온 때는 2006년 3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장으로 치러진 그녀는 ‘이난영 나무’로 명명된 배롱나무로 다시 태어나 유달산과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삼학도 중턱에 잠들었다.
삼학도 복원공사가 시작된 것은 10년 전. 목포시는 세 개의 섬을 연결하는 2242m 길이의 수로를 만들고 바닷물이 드나들게 함으로써 삼학도를 예전의 섬으로 복원했다. 섬과 섬 사이에는 10개의 다리와 산책로도 만들어 목포시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났다. 내년에 제분공장이 당진으로 옮겨가고 나면 삼학도는 미흡하나마 옛 모습을 되찾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분공장이 옮겨가고 석탄부두가 문을 닫으면 없어질 운명에 처한 거대한 사일로와 삼학도선의 운명이다. 이를 둘러싸고 목포시민들 사이에는 사일로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삼학도선을 레일바이크 선로로 이용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 또한 목포의 역사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유달산에서 수도하던 한 청년을 사모하던 세 처녀가 상사병으로 죽어 세 마리의 학이 되었고, 이 사실을 모르는 청년이 유달산으로 날아오는 학을 화살로 쏘아 죽이자 바다에 떨어져 세 개의 섬이 되었다는 삼학도. 애달픈 전설의 주인공인 그 삼학도가 다시 섬이 되어 국민가요 ‘목포의 눈물’을 사랑하는 애창가들의 가슴 속으로 훨훨 날아들고 있다.
목포=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