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춘란배 1회전 ● 강동윤 9단 ○ 조치훈 9단
입력 2010-03-31 17:39
늘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들어서니 언덕길이 나온다. 처음 마주친 풍경과 새로운 길, 막다른 골목에도 봄은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늘 평지만 걷는다고 생각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이렇게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 혹은 꽃밭을 만날 수 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은 더 윤택해지고 의욕도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 소개할 깜짝 한 수는 오랜만에 등장한 조치훈 9단과 강동윤 9단의 대국. 조치훈 9단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개인적으론 무한한 존경심과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늘 올려보게 되는 분이다. 언젠가 ‘목숨을 걸고 둔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는데, 정말 그런 것이 가능한지 필자로서는 아직 그런 느낌을 가져보지 못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강동윤 9단과는 몇 년 전 어느 시합에서 붙고 이번이 두 번째 시합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반 백의 진영에 뛰어든 흑의 타개를 보며 흑백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며 보고 있는데 역시나. 곧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며 백은 치열하게 실리를 취하며 균형을 맞춘다. 그럴듯한 싸움하나 벌어지지 않고 야금야금 백의 우세로 흘러가던 중 흑의 마지막 승부수가 나왔다.
실전도의 백1에 흑2로 막은 장면. 흑2는 얼핏 보면 당연한 수 같지만 이곳에 수가 남아 있었다. 흑2로는 a의 곳에 두는 것이 정수지만 이렇게 물러서면 어차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승부수다. 초읽기에 몰린 백은 몇 수 선수 활용을 하며 시간을 벌어 수읽기 확인을 한 다음 드디어 따끔한 응징에 들어갔다.
참고도의 백1! 흑의 승부수를 응징하는 보이지 않는 수읽기였다. 흑2로 막을 수밖에 없을 때 백3,5로 두어 패가 났다. 흑6으로 b에 이으면 백c로 가만히 이어 그대로 끝이 나고 만다. 백이 수순을 바꾸어 백3,5를 먼저 둔 다음 백1로 찌르면 그 때는 흑c로 잡아 아무 수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둑에서 볼 수 있는 수순의 묘미다. 수를 자세히 읽지 않고 대충 감으로 두어버리면 특히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 바둑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실력을 늘이기 위해선 수읽기와 사활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막상 혼자서 사활공부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적절한 적수와 함께 아이스크림 사기라도 하면서 한 문제 한 문제 풀어 가면 기력향상도 되고 즐거움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들이 가기 전, 사활 책 한권씩 가방에 챙겨 보심이 어떨지요.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