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형기준 성과’ 엉터리 통계 왜… 그때 그때 다른 ‘형량 분석 대상’

입력 2010-03-30 19:19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은 양형기준 시행 이후인 지난해 7월부터 연말까지 선고된 살인, 강도, 성범죄 등 8대 범죄 사건의 형량을 분석해 2008년 같은 유형의 사건과 비교한 통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2008년과 지난해 분석대상을 다르게 선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제1기 양형기준 적용현황 분석보고서’ 작성과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이 오류는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 결국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다.

◇틀린 통계 어떻게 만들어졌나=운영지원단은 올해 초 분석 결과를 토대로 내부적으로 양형위에 제출할 보고서를 만들었다. 대법원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보도자료는 지난달 26일 이메일로 기자들에게 배포돼 지난 2일자로 기사화됐다.

본보를 포함한 언론은 ‘양형기준 시행 이후 중대범죄 형량은 높아지고 편차는 줄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당시 대법원 보도자료에는 원데이터 등 세부 통계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지난 22일 양형위 제24차 전체회의에 제출됐다. 그러나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판결문을 심층 분석한 본보 3월 18∼22일자 신문에 게재된 기획 보도를 본 일부 위원이 기사 내용과 통계가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본보가 당시 분석한 152건의 형량은 지난해 같은 유형의 평균형량보다 낮았다.

일부 위원이 보고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2008년과 지난해 통계의 분석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보고서에는 2008년 통계는 단일범죄를 분석했고, 2009년 통계는 경합범을 포함해 분석했다고 명시됐다. 가중처벌 대상인 경합범죄를 포함한 형량은 단일범 형량에 비해 당연히 높다. 결국 회의에선 이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30일 “통계를 급하게 만들다보니 분석 대상 선정에 실수가 있었다”며 “2008년 통계는 동종 경합범을 포함한 단일범죄를 기준으로 분석했지만 보고서에 기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대법원 보도자료는 성과만 부풀려=대법원은 언론에 배포할 보도자료를 작성하면서 보고서의 전체 취지와는 다르게 양형기준 시행 이후 형량이 높아지거나 형량편차가 줄어든 부분만 발췌해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보도자료는 살인사건 양형기준의 가중영역에서 평균형량이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해 ‘강력범죄의 평균형량이 상승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보고서 내용은 살인범죄 전체 사건의 평균 형량은 2008년에 비해 0.33년 낮아졌다는 것이었다. 양형기준의 감경영역은 평균형량이 2.38년 하락했고 기본영역에서도 0.63년 줄어든 것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는 또 뇌물범죄 양형기준의 일부 영역을 들어 ‘전반적으로 평균형량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에 따르면 뇌물수수죄 평균형량은 양형기준 시행 전 1.79년에서 시행 이후 1.20년으로 더 낮아졌다.

심지어 조두순 사건 이후 논란을 빚었던 성범죄 사건의 경우 보도자료는 ‘형량차이 비교가 가능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양형기준 시행 이후의 평균형량이 이전보다 상승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사건에선 일부 영역의 형량이 시행 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돼 있다.

법원 안팎에선 대법원의 성급한 성과주의가 빚은 결과라는 평이 우세하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