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집합의 미학’… 제주서 심수구 화백 특별전 ‘존재들의 함성’
입력 2010-03-30 18:02
제주에 봄이 성큼 왔다. 유채꽃이 대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고 바람도 한결 따스해졌다. 제주시 저지리 현대미술관에서는 나뭇가지들의 봄맞이 노래가 한창이다. ‘싸리나무 작가’로 불리는 심수구(60) 화백의 특별전 ‘존재들의 함성’이 지난 주말 개막해 5월 11일까지 열린다.
고향인 울산 바닷가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10년 전 붓과 물감을 버리고 싸리나무 가지들을 화면에 붙이기 시작했다. 시골 처마밑에 쌓여있던 장작더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수많은 나뭇가지들은 ‘바람결같은’ ‘천수답같은’ ‘성냥개비같은’ 등 화폭이 되고 조형물이 된다.
“나뒹구는 나뭇가지 등 하찮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현대미술이 아닐까요. 만나고 헤어지고, 왔다가 떠나가고, 순간에서 영원으로 삶의 모습을 재현하는 작업입니다.”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있는 것의 발견을 시도하는 그의 작품은 집합의 미학이다.
산처럼, 바다처럼 전시장 벽면을 압도하는 작품에선 장중함이 느껴진다. 제주에 널린, 구멍난 돌멩이를 닮기도 했다. 최근 작업의 확장을 시도한 작품 ‘책 풍경’은 나뭇가지의 자연미와 책의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코아트페어에서 ‘솔드아웃’(매진)을 기록하면서 유명세를 탄 심 화백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작업에만 매달리는 전업작가다. 김창우 제주현대미술관장은 “나뭇가지를 한 점 한 점 붙인 작품은 한 예술가가 묵묵히 걸어가는 존재의 길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2008년 개관한 제주현대미술관에는 부설 스튜디오 입주작가 권순익의 작업실과 박서보 박광진 고영훈 등 작가들의 개인 아틀리에가 함께 있어 전시와 투어를 겸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개관 때 다수의 작품을 기증한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장도 마련됐다.
이밖에 미술관이 최근 개최한 만화아카데미에 참여한 박재동 윤승운 이두호 김동화 이희재 등 유명 만화가들의 작품도 나란히 전시 중이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것에서 귀중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만화가나 화가는 같은 운명을 지닌 이들이다. 장르가 다르고 재료도 각각이지만 사람 사는 얘기를 들려주는 전시이기에 일맥상통한다(064-710-7801).
제주=글 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