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503020’
입력 2010-03-30 17:52
미국의 샐러리맨은 흔히 ‘404040’으로 묘사된다. 주당 40여 시간씩 40여년 직장에서 일하고, 은퇴한 이후에는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40% 정도로 여생을 보낸다는 뜻이다. 요즘 40년이나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조만간 다른 표현으로 대체될 것 같다.
우리에겐 ‘503020’이란 말이 있다. 주당 50여 시간씩 30여년 일하고, 퇴직하면 평상 수입의 20% 정도의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거의 빈손으로 맞아야 하는 ‘노후의 고단함’이 함축돼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상대 빈곤율은 2006년 기준 45%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자녀 뒷바라지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달랑 집 한 채만 남는 퇴직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다른 국가들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후 불안은 큰 편이다. HSBC그룹이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 대만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7개국 성인남녀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61%가 ‘현재 재무계획에서 은퇴자금 부족’을 가장 두려운 위협으로 꼽았다. 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79%는 자신의 저축수준을 매우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은퇴 이후를 불안해하면서도 막상 준비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박봉에다 물가는 오르기만 하니 저축하기가 여의치 않은 게 상당수 샐러리맨 처지다.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은 또 있다. 길어지는 수명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 수명은 80년을 넘는다. 여성은 83.3세, 남자는 76.5세다. 실제로 평균수명이 빠르게 증가하는 ‘장수시대’다. 특별한 수입도 없이 20년 이상을 버텨야 하니, ‘없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자식에게 의존하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선 안 된다. 노후는 어엿한 인생의 한 부분이다. 축복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 준비가 필요하다. 자식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자기에게 투자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세계적인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쓰여 있는 글이다.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 정부는 장수시대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