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장들의 배신

입력 2010-03-30 17:47

우리 교육계 현실이 참담하고 부끄럽다. 이쯤 되면 학교는 아이들이 학문을 닦고 꿈을 키우는 미래의 전당이 아니라 교장들의 호주머니를 챙겨주는 비리의 온상이다. 이런 썩은 교장들이 있는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 공부를 시켰으니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제대로 설 리 있겠는가.

서울지방경찰청은 수학여행 등 학교행사를 하면서 특정업체를 선정해주고 뒷돈을 챙긴 수도권 전현직 초·중·고 교장 157명을 적발, 수사 중이라고 그제 밝혔다. 이들은 숙박업체로부터 2박3일 기준으로 학생 한 명당 8000∼1만2000원씩 받았고, 버스회사로부터는 한 대당 하루 2만∼3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전직 교장이 브로커로 나서서 업체와 교장들을 연결시켜 주는 등 고리 역할을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일선 학교 교사들 증언에 따르면 교장에게 들어간 뒷돈의 대가는 학생들이 그대로 치르게 된다. 좁은 방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등 숙박시설은 열악하고 식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항의하면 업체 사장은 묵묵부답이거나 오히려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수학여행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해에도 부적격 칠판과 운동기구를 사주고 뒷돈을 받은 현직 교장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듯 교육기자재 납품이나 교내 시설공사는 교장의 단골 뇌물통로다. ‘방과후 학교’는 교장에게 강사를 소개하는 브로커가 활약하고, 교장이 채용권한을 갖고 있는 기간제 교사도 부수입을 늘려주는 수단이다. 학교 급식업체나 매점도 학생보다는 교장 비위를 맞춰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수학여행으로 뒷돈을 받은 교장들은 이런 비리에도 연루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투명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는 특히 정직하고 깨끗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교장에게 막강한 권한만 주고 견제나 감독 장치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장의 하수인이 된 지 오래고 교육청 간부들이 교장과 한통속이 되다 보니 감독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 번 교장이 되면 8년이 보장되는데, 이런 기관장 자리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교장 권한 확대와 초빙형 공모제를 통한 실질적 임기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니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교장들의 비리가 최근에 생겨난 것이 아닐진대 결국 모든 책임은 이를 방치해온 교육당국에 있다. 잘못된 교장임용제도가 비리를 만들었고 교육청의 제 식구 감싸기가 비리를 키웠다. 한마디로 학생들 보기가 민망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교육비리 근절을 선언한 만큼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통해 학교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학생들 충격을 핑계로 온정을 베풀어서는 안 되며, 비리에 연루된 교장들은 전원 퇴출시켜야 한다. 그들을 어떻게 다시 교장실에 앉힐 것인가. 학교는 학생을 위한 것이지 교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