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규환 (15) ‘따뜻한 겨울보내기…’는 모금의 참 의미 알리는 계기

입력 2010-03-30 21:18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뜻하는 세 개의 빨간 열매. 바로 사람들의 상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의 열매’다. 이 사랑의 열매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사회복지기금을 조성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3, 4대 회장으로 일했다. 2002년 말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의 일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모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전문가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모금에 관해서 만큼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1959년부터 아펜젤러 할머님의 편지를 통한 모금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고, 이후 수십년 동안 현장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 모금에 대한 강의도 제법 해 왔다.

모금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받을 줄만 알지 이후 처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후원금이든 물품이든 간에 받고 나면 영수증과 함께 감사 편지를 보내야 한다. 이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베푼 사람들에게도 만족과 보람을 느끼도록 해서 그 선의의 후원이 계속 이어지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테면 후원자가 보내준 10만원으로 무엇을 했는지, 몇 명의 아이들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쓸 학용품을 샀다든지, 몸이 불편한 원아에게 필요한 의료 기구를 샀다든지 하는 아주 세세한 쓰임새를 말하는 것이다. 후원자들 역시 그런 베풂과 나눔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런 노하우를 바로 아펜젤러 할머님께 배웠다.

무엇이 필요한지, 무슨 일을 하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왜 그만한 돈을 들여 그 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만 모금하면서 당장의 목표 액수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소홀하기 쉬운 점들이다.

내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취임해 한 일 가운데 특히 성과가 컸던 것은 ‘따뜻한 겨울 보내기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되며, 지금도 계속되는 것으로 안다.

큰 성과를 못 내던 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나는 서울시내 25개 구청끼리 경합을 벌이도록 만들었다. 모금 액수에 관한 선의의 경쟁이었다.

나는 모든 구청을 일일이 방문해 모금에 관해 설명하고, 100만명 후원자 운동에 구청장이 앞장서 주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구청장들도 각 구청에서 모으는 성금 전액을 구청장 이름으로 구민을 위해 쓰도록 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하자 큰 호응을 보였다.

서초구청의 경우 2000만원을 밑돌던 모금액이 2002년 겨울 직접 구청장을 방문한 이후 3억원을 넘어섰다. 성과가 가장 높았던 용산구청은 10억원 이상을 모았다. 이렇게 서울 25개 구청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액이 몇 배씩 증가했다.

나는 직접 찾아가는 방식과 함께 이러한 모금액의 추이를 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뿌렸다. 이것이 지역 신문을 비롯해 여러 언론매체에 기사로 나가면 구청장들은 예민해지게 마련이다. 경쟁 아닌 경쟁이 돼 간혹 볼멘소리들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이 전부 각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결코 원망할 일만은 아니었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