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像 키 1.5m 큰 사연은?

입력 2010-03-29 22:23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의 키가 당초보다 1.5m나 커진 사연 등 동상 관련 비화(秘話)가 40여년 만에 공개됐다.

서울시는 29일 1966∼68년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과정에 참여한 7명을 찾아 자문회의를 열어 당시 주물 작업과 기단부 시공방법 등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흙으로 본을 뜰 때 이순신 장군상의 높이는 5m였다. 하지만 세종로의 폭이 100m로 확장되자 ‘규모를 키워 주변과 조화토록 하라’는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현재의 6.5m로 변경됐다.

점토 조각은 동상을 제작한 김세중(1986년 사망) 작가의 집 마당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설작업장에서 진행됐다. 동상 크기가 커지는 바람에 얼굴과 투구 등 상부 조각은 천장의 플라스틱을 뚫고 진행됐다.

동상 주조는 성수동 대광공업사에서 주조 기술자였던 김주남(65)·류용규(63)씨에 의해 진행됐다. 열악한 경제상황에 구리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국방부에서 가져온 탄피를 사용하려 했지만 쇠 성분이 많이 쉽게 굳는 바람에 포기하고 해체 선박의 엔진, 놋그릇, 놋수저 등을 녹여 만들었다. 이마저 제때 공급되지 않아 한번에 주조되지 못해 동상 두께가 고르지 못하고 색상도 균일하지 않았다. 청동색을 내기 위해 페인트와 동분을 섞어 표면을 칠하기도 했다.

여섯 조각의 몸체 결합 과정에선 동상 재료와 같은 성분의 용접봉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 부산 미군부대에서 구해온 구리 용접봉을 사용했다. 겨우 외부는 용접했지만 내부는 일부밖에 하지 못해 내부 균열이 많이 발생했다.

완성된 8t 규모의 동상은 일본산 크레인으로 68년 4월 27일 오전 10시쯤 현재의 자리에 끌어올려졌다. 당시 사고 방지를 위해 세종로의 모든 전차가 운행을 멈췄다고 크레인 기사였던 이기종(72)씨는 전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