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13) 수송 외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신용·개척정신 밑천” 육해공 물류 왕국 일궜다
입력 2010-03-29 21:45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3월 10일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은 주월미군사령부에서 미군 군수담당 부사령관 앵글러 중장과 마주했다. 두 사람은 수송 계약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한진상사가 그해 5월 25일부터 1년 간 미군 군수물자 하역 및 수송을 담당하되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면 자격 취소와 함께 300만 달러를 한진상사가 미군에 지불하고 미군이 계약을 취소하면 한진상사에 동일 액수를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79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은 당시 국내 업체가 베트남에서 수주한 최대 용역이었다. 한진상사는 첫 일거리였던 L.S.T(Landing Ship For Tanks)로 들여온 군수품 1500t을 하역해 인근 미 27수송대대 기지창까지 수송하는 일을 32시간 만에 마무리하며 미군을 놀라게 했다. 미군들은 일주일은 걸릴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신임을 얻은 그는 다음해 2차 계약에서는 1차 계약의 5배에 달하는 34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1971년까지 약 5년 반 동안 베트남에서만 모두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외화를 획득, 오늘날 한진그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에 불과한 때였다.
베트남에서의 성공은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꼽은 조 회장의 신념이 바탕이 됐다. 그는 1945년 11월 1일 인천 해안동에서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뜻이 담긴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 때부터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조 회장은 1956년 11월 1일 미 8군과 7만 달러 수송 계약을 체결하며 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계약 초기 임차한 트럭 운전사가 미군 겨울 점퍼를 ‘차떼기’로 남대문 시장에 팔아넘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운전사가 인도처로부터 물건을 인도했다는 사인까지 받아온 터라 변상의 의무가 없다고 버틸 수 있었지만 조 회장은 돈보다 신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직원을 남대문 시장에 상주시키며 물건이 나오는지를 살펴 장물을 취득한 상인으로부터 1300벌의 점퍼를 모두 되산 후 수송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미군들은 조 회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조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에서 “한진상사를 창업한 초창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첫째가 신용이고 둘째는 자금관리였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힘든 것이다. 자금도 마찬가지다”고 썼다.
이런 조 회장에게 일생일대의 결단이 필요했던 것은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 인수였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주변 11개국 항공사 중 꼴찌 항공사였다. 비행기 좌석 수를 다 합쳐도 보잉747 점보기 한대(40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였고 장단기 금융 채무만 27억여 원에 이르는 부실 덩어리였다.
당시 정권은 조 회장에게 공사 인수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조 회장은 거절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조 회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이며 국적기가 나는 곳에서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며 설득하는 것까지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국 한진상사 창립 23주년이 되는 1968년 11월 1일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결정했다. 납입 자본금 15억원을 액면가대로 계산해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하고 공사 누적 적자를 포함한 부채 등 27억여원을 그대로 떠맡는 조건이었다. 공사 인수 후 조 회장은 동남아, 미주, 유럽 등지로 노선을 확장하며 부실 항공사를 세계적 항공사로 키워냈다. 특히 미국 노선의 경우 불리한 한·미 항공협정으로 노선 개설에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 1971년 4월 마침내 서울∼도쿄∼LA행 화물기를 띄우며 미주노선에 대한항공 마크를 찍을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서울∼도쿄∼호놀룰루∼LA에 정기 여객기도 취항하며 현재 39개국 117개 도시 취항의 밑거름이 됐다.
이에 더해 1977년 5월에는 해상수송과 수산업을 함께 해왔던 대진해운을 해상 운송만 전문으로 하는 한진해운으로 재탄생시켰다. 이후 한진그룹은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계적 종합 수송 그룹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조 회장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수송 외길과 관련 이렇게 회고했다. “그동안 나는 남이 터를 다져놓은 사업에 넘나들지 않고 스스로 창의로 개척함을 신조로 삼았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사업은 예술’이라고 믿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