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13) 수송 외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내가 본 정석 조중훈 회장
입력 2010-03-29 21:44
깐깐한 눈썰미·통찰력 항공산업 지식도 탁월
1968년 한진상사에 입사해 1974년 대한항공 기획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02년 11월 17일 정석 조중훈 회장이 돌아가실 때까지 조 회장을 30여년 간 가까이 모셨다.
곁에서 조 회장이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직관과 통찰력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분 앞에서는 늘 긴장해야 했다. 특히 항공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항공 산업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능력은 항공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였다.
1970년대 말 항공기 구매업무를 맡고 있던 시절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 차 독일 브레멘으로 출장을 갈 때의 일이다. 브레멘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조 회장은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며 “이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침반이야, 새벽 꿈에 서북쪽 방향의 별 3개가 내게 들어왔어. (항공기가) 서북쪽에 서 있으면 살 거야” 하셨다. 도착해 보니 과연 서북쪽으로 항공기가 향해 있었지만 바다 쪽이어서 안 사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바다 쪽에 있어도 염분 있는 바닷바람이 엔진에 들어갈 수 없도록 커버가 잘 씌워져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평소 비행기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조 회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 회장은 또 신의를 중요시한다. 아랫사람에게 한번 맡긴 일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신뢰했다. 대한항공이 프랫 앤 휘트니(P&W)사의 엔진을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것도 조 회장의 신의에 바탕 하고 있다.
P&W사의 모그룹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다니엘 회장이 조 회장과 만났을 때였다. 조 회장은 P&W 엔진 신뢰도가 98.7%라는 것은 반대로 1.3%의 항공기가 운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다니엘 회장은 2년만 시간을 주시면 신뢰도 100%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했다. 조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다니엘 회장을 믿겠다고 화답했고 다니엘 회장은 20여년 간 조 회장의 능력과 인간적 매력에 매료돼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았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기업들이 명멸하고 그만큼의 기업인들이 있었지만 조 회장처럼 묵묵히 외길을 걸으며 성공한 기업인은 흔치 않다. 한진그룹을 세계 최고의 수송 물류 전문 그룹으로 키워낸 조 회장의 집념과 결단은 오늘날 무한 경쟁을 헤쳐 가야 하는 이 시대 기업인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심이택 전 대한항공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