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제성호] 북한 식량지원과 인도주의

입력 2010-03-28 20:16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연간 식량 총 수요량은 감량 배급시 540만t인데, 지난해 작황이 좋지 않아 411만t밖에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의 식량 제공과 수입에 의한 자체 조달을 감안하더라도 외부의 추가 지원이 없으면 북한은 올해도 식량부족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년의 경우 자체 생산량 430만t으로 그럭저럭 버틴 것을 보면, 식량난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식량 부족 그 자체보다 ‘성분’에 따른 차별적 배급, 곧 계급차별이란 인권침해 요소가 식량난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튼 식량난의 만성화는 주체농법 등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1950년대식 동원체제(150일 전투, 100일 전투 등)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그런 반면 북한은 부족한 식량 보충을 위해 우리 측에 식량 지원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식량난 근본해법은 농업개혁

식량난은 북한의 농업체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근원적 해결이 어렵다. 지난 3월 15일 제13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스위스 대표는 국제사회의 지원에 기댈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식량증산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식량 증산을 위한 가족농 확대와 인센티브 허용 등 자구적 노력을 펴는 게 긴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식량 지원은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 밑 빠진 독에 물 퍼붓기가 될 것이다. 식량 지원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농업체제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실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 ‘햇볕정책’처럼 모든 식량 지원을 ‘무조건’의 인도주의 아래 실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군사적 전용이 이뤄지는 것을 묵인하면서 인도주의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까닭이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호혜성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정부 차원의 식량지원에 있어선 차별적 접근이 요구된다. 무상(無償)의 인도 지원과 상호적 인도 지원의 구별이 그것이다.

무상 인도 지원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국제관례는 대략 5만t까지 식량을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무상 지원이 과도하고 또 오래 지속되면 북한의 농업체제 개혁, 결과적으로 식량난 해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간 인도적 사안은 북한 주민의 식량난 완화문제 말고도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국군유해 발굴·송환문제 등이 있다. 이제 이들을 함께 다루고 서로 만족을 얻는 ‘공정하고 형평적인 해결’ 구도를 정착시킬 때가 됐다. 상호적 인도지원은 바로 이 같은 방식의 인도 지원을 말한다.

한편 인도 지원에 있어 인도주의 외에 ‘인권’ 개념을 도입하고, 양자의 연계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식량 지원의 목적은 북한 주민의 식량권과 생존권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식량지원의 경우 인도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군사적 전용 방지 및 분배투명성의 확보가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이는 ‘조건’이 아니라 인도 지원에 내재된 ‘원칙’이요 ‘규범’이다.

식량 분배 투명성 확보를

문제는 분배투명성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2008년 6월 미국이 북한과 채택한 양해서한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당시 미국 측은 북한 측이 식량분배지역 리스트를 제공할 것, 24시간 전에 사전통보 시 어느 지역이든 방문을 허용할 것, 식량 저장창고에 대한 접근을 허용할 것, 모니터링 요원을 65명으로 할 것, 분배현장 방문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NGO 지방사무소를 설치할 것 등의 내용을 관철시킨 바 있다.

우리도 분배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의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국간 협상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원칙에 입각해 식량 지원을 해야 인도주의 구현, 취약계층 우선 지원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 불필요한 남남갈등을 줄일 수 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