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절제된 아름다움

입력 2010-03-28 20:16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예술인 마을. 십년 전 모습과 큰 변화는 없지만 새로 생긴 건물과 마을 내 프로그램 등 볼거리가 늘어났고 그래서인지 방문객들도 예전보다 상당히 많이 늘었다고 한다.

헤이리만의 매력 가운데 ‘절제된 그 무엇’을 으뜸으로 삼고 싶다. 이곳의 모든 건물은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건축자재의 질감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시멘트, 나무, 철골들이 본래 질감 그대로 표현된다. 다소 거칠고 성의 없어 보이지만, 다양한 유성도료를 사용한 현란함보다 예술적이고 인간적인 무게감은 가공된 아름다움을 누르기에 충분하고 독특하다.

이곳은 또 외부 돌출간판이나 명패가 일절 없다. 로마 시내의 유적지 내 상업시설에도 간판이 전혀 없다고 한다.

헤이리의 가로등 또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 밤에 불이 밝혀질 때, 다니는 길만 밝혀줄 뿐 주위까지 굳이 환하게 하지 않는다. 빛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한 설계다. 동네 가로등 불빛이 너무 환해 잠을 청할 때 방해가 되기도 하고 시야를 피곤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의 남다른 절제가 박물관이나 예술작품이 주는 감흥 못지않게 나는 좋다. 일련의 규율들은 현재도 촌장이 존재하는 헤이리 마을의 불문율이다. 엄격한 통제와 자율적 강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도시들도 무분별한 간판 설치나 컬러 채색을 일부 통제하여 통일되고 깨끗한 이미지의 외관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음을 본다.

또 하나 사례. 청계천 주변의 상가들도 지자체의 지원과 통제 아래 예전보다 깔끔하고 거부감 없는 간판을 달고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시행 초기 단계에는 서로 이해관계와 이기심이 맞물려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착된 후 상인들도 많이 흡족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에게 모 음료광고의 촬영지로 알려진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과 산토리니 섬은 온통 흰색의 건물과 파란색의 창문들이 그리스의 해변 하늘과 어우러져 너무도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그야말로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훌륭한 그림엽서가 된다. 유럽의 대부분 도시들은 지붕색깔에서도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피렌체의 경우는 고동색으로 엄격히 통제되고, 영국의 히드로 공항 주변도 항공기 이착륙 시 승객들이 보게 되는 도시전경을 위해 컬러를 통제하고 있다.

부분별한 컬러의 쾌감보다 절제된 통일감과 격조가 한 차원 높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된다. 적당한 규율과 통제가 무조건적 자율 방임보다 분명 낫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렇듯 색과 빛에 대하여 철학을 가진다면 외적, 타율적 강제가 내적, 자율적 강제로 승화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으로 믿는다.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