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한 서정 교차하는 그림·돌조각… ‘시간의 숨, 삶의 결-박수근과 조선시대 돌조각 전’
입력 2010-03-28 18:03
지난 10일 열린 K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여인들’이 8억5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빨래터’ 진위공방 이후 박수근 작품이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박수근의 재부상은 작품성을 떠나 힘든 시기에 한국적인 서정이 담긴 그림을 남긴 그를 명실공히 국민작가로 대접해야 한다는 미술계 안팎의 공감대 형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박수근은 왜 국민작가로 불리는가. 서울 충무로 신세계갤러리가 신세계백화점 개점 80주년을 맞아 4월 11일까지 여는 ‘시간의 숨, 삶의 결-박수근과 조선시대 돌조각 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박수근 작품 22점(유화 10점, 수채화 목판화 연필화 등)과 조선시대 돌조각 9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돌조각과 비교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의 작품과 조선시대 돌조각이 공유하는 전통적 미감의 원형을 살펴보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박수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이자 깊은 애정과 공감을 받는 작가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란 정서적인 바탕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박수근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냈으며 사라지고 버려지는 것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의 사람들과 핍진한 삶의 모습은 우리의 현대사이자 가난한 현실 그대로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참하거나 슬퍼보이지만은 않는다. 시장통 사람들, 함지박을 이고 일터를 오가는 여인, 아이를 업고 있는 소녀 등에서는 격조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박수근 작품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과 천연덕스러움으로 친근한 정서를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돌조각이 가진 미학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그는 생전에 문인석 등 조선시대 돌조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코자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돌조각처럼 권위나 격식을 버리고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자연스레 표현했다는 것이다.
박수근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마티에르(작품 표면의 요철에 의한 효과)다. 박수근은 두터운 질감 효과를 돌조각이 가진 표면 질감이자 우리 산하에 가장 흔한 화강석의 질감에서 가져오고 있다. 끊임없는 반복 작업을 거쳐 얻을 수 있는 이같은 마티에르는 그림의 주제인 보통사람들의 현실을 잘 반영하는 조형효과를 이룬다.
우리가 박수근의 작품에서 얻는 것은 우리에게 결핍된 것들이다.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풍족한 시대에 살면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서 마음의 고향 같은 서정을 보상받는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조선시대 돌조각에서 ‘아하’하고 감탄사를 발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것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박수근 작품의 모작을 전시하고 돌조각 작품과 함께 만져볼 수 있도록 하는 촉각 체험전이 마련되고, 마티에르와 형상을 종이찰흙에 찍어보는 이벤트도 열린다. 작품 설명문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를 병기했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4월 13일부터 29일까지 신세계 광주점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한다(02-310-192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