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불안한 욕망, 거친 욕망, 즉흥적 욕망

입력 2010-03-28 17:33


테니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욕망이 충돌하면서 상대방을 재단하고 조종하려는 모습이 있음을 드러낸다. 번역과 연출을 맡은 문삼화 연출은 원작의 틀 안에서 대사를 현대화하고 캐릭터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

미국 명문가 출신인 블랑쉬는 저택과 밸리브 농장을 잃고 뉴올리언스 ‘낙원’에 사는 동생 스텔라에게 온다.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는 블랑쉬가 못마땅하다. 농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따지던 스탠리는 블랑쉬의 과거를 캐내서 그를 압박한다.

블랑쉬는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과 농장을 잃고 여러 남자에게 기대며 살아오다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나 스텔라에게 왔다. 누군가에게 의지해 안정을 찾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던 그는 스텔라에게 와서도 끊임없이 남자를 찾는다. 블랑쉬는 현실을 외면하고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진실보다는 진실이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스탠리는 즉흥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을 중시하는 남자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권위를 필사적으로 지키는 인물로 그려진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블랑쉬의 동생 스텔라다. 언뜻 제멋대로인 언니 블랑쉬를 극진히 돌보는 동생으로 비춰지지만 스텔라는 가장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블랑쉬와 함께 집안을 지키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탠리를 따라 떠났고, 스탠리가 폭력을 휘둘러도 함께 잠자리를 보내는 것으로 그를 용서한다. 자신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블랑쉬를 정신병원에 보내는데 동의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아주 만족스럽다. 블랑쉬를 연기한 배종옥과 이승비는 불안한 욕망으로 가득한 블랑쉬에 자신의 색을 덧입혔다. 배종옥의 블랑쉬가 도도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낸다면 이승비의 블랑쉬는 수동적이고 연민을 이끌어내는 면을 갖췄다. 스탠리을 연기한 이석준은 거친 욕망을 뿜어내는 힘을 흡인력 있게 객석에 전한다. 이지하의 스텔라는 눈여겨 볼 만 하다. 영화나 이전 공연에서 스텔라는 욕망을 감추고 있는 조용한 인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지하는 차분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스텔라 안에 내재된 욕망을 끄집어내 관객에게 보여준다. 5월 2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766-6007).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