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연기 공론화] 美 공식입장은 “예정대로”지만 미묘한 변화 기류
입력 2010-03-26 18:44
워싱턴서 첫 전작권 토론회
워싱턴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건 이 이슈에 대한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미국 내에서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공론화 배경=한국 정부는 그동안 전작권 전환 연기에 대해 사실상 공론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미국 측은 ‘예정대로 2012년 4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잇단 전작권 전환 연기 또는 폐기 주장은 민간 싱크탱크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 미 정부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것이어서 미 정부의 별다른 움직임도 아직 없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이 결과적으로 수정되거나 새로 결정될 때 대개 싱크탱크 쪽에서 먼저 불을 지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잇단 문제 제기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이들이 연기를 주장하는 배경엔 무엇보다 한국이 아직까지는 효율적인 대북 억지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전환 시기상조론인 셈이다. 특히 북한이 사실상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으로 간주되고 있고, 미사일 능력이 향상되고 있어 비대칭 전력에서 우세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초 방한했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통해 연기 문제 논의 여부를 타진했었다. 미국 측은 난색을 표하면서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벨 방한 이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연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등 공개적으로 미국 입장을 천명했다.
당시 캠벨 차관보는 “한국 내에서의 전작권 전환에 대한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가 이 언급이 마치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자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명했었다. 지난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작권 토론회에는 당초 데릭 미첼 국방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참석해 연설하기로 돼 있었으나 출장을 이유로 취소했다. 정치인과 학자들이 전작권 전환 연기를 주장하는 자리에 핵심 당국자가 참석하는 건 자칫 미국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는 부담스러워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 내 연기론자들은 주장을 확산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논란 가능성=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토론회에서 “전작권 전환 재검토 논의는 군사적인 접근보다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통해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국이 정치적 결단을 통해 전환을 연기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올 초 전작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브루스 벡톨 미 해병참모대 교수는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좋은 결과를 얻을 경우 한국 정부 차원에서 연기가 공식 제기될 것이라고 정치적인 추진을 전망했다.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도 올 가을 한국의 정치적 상황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합의사항을 고수하려는 미국 정부와 어떻게 이 문제를 조정해 나가느냐가 한·미 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해 양국 간 정치적 논란거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래리 닉시 박사도 24일 한국 대사관 코러스하우스 강연에서 2012년 대선 등 남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전환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연기 반대 주장도=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으로 2007년 전작권 전환 합의 때 깊숙이 관여했던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토론회 질문자로 나와 “북한의 핵 역량을 전환 연기의 근거로 내세우는데, 핵무기 대응은 작전지휘권 문제가 아니라 한·미가 어떤 군사적 옵션을 갖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전작권 전환 문제는 정치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Key Word 전시작전통제권
한국전쟁 발발 시 한국군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권한으로 현재 미군이 갖고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12년 4월 17일을 기해 한미연합사령부(주한미군사령관이 사령관 겸임)가 갖고 있는 이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