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건보 재정… ‘총액계약제’ 대안 부상
입력 2010-03-26 18:48
건강보험 재정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예상하는 올해 재정 적자는 1조8000억원가량이다.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건보공단은 문제 해결을 위한 ‘건강보장선진화위원회’를 최근 발족했다. 건보공단은 특히 재정 안정화를 꾀한 대만의 성공 사례를 좇아 ‘총액계약제(한 해 동안 의료기관별로 건강보험 급여비를 정해놓고 총액 한도 안에서만 건보 재정을 쓰도록 하는 사전지불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위험한 건강보험 재정, 왜=건보 재정의 80%는 보험료 수입이다. 보험료를 올리면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직장보험료율은 월급의 5.33%로 낮은 편이지만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저항은 크다. 반면 국민 의료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보험료 수입만으로는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부족분은 국고지원금으로 메웠으나 내년 12월로 정부 지원이 끊기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건보가 예측한 대로 올해 재정 적자가 1조8000억원이 되면 누적수지가 4500여억원으로 뚝 줄어든다. 건보정책연구원은 최근 건보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내년 9.1%, 2012년 6.1%, 2013년 4.5%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2∼3년 안에 누적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재정 불안은 보장성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가 2005년부터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2008년 건보 보장률은 62.2%로 전년도 64.4%보다 2.2% 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비급여 진료비가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재정 압박도 보장성 강화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만식 총액계약제 도입 논의=건보공단은 우리나라와 제도가 비슷한 대만의 사례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대만은 1995년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행위별수가제(의료행위에 따라 건보 급여비가 지급되는 방식)를 채택했다.
하지만 과잉 진료 등으로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자 98년부터 치과, 한의, 양의 순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했고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대만은 총액계약제 실시 이후 보험료율을 7.7%로 높였지만 직장인의 경우 건보료의 30%만 부담해도 된다.
대만은 안정적인 재정을 토대로 보장률을 높였다. 대만의 건보 보장률은 85% 정도다. 저소득층 무료 진료 혜택 범위도 넓다. 암, 혈우병, 만성신부전, 중증 화상 등 30종류의 심각한 질병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만 국민들의 건강보험 만족도는 80%대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보험 만족도는 50% 안팎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대만 건강보험 타이베이(臺北) 분국 비서관인 칸디스 카오씨는 “저소득층은 무료로 진료받고, 중증 환자는 진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보험료를 많이 내더라도 혜택이 크니까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타이베이=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