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당 따로, 법원 따로 사법개혁안

입력 2010-03-26 17:27

대법원이 그제 내놓은 사법제도 개선안은 한나라당 안과 곳곳에서 충돌한다. 한나라당이 지난 17일 제시한 법원 개혁안의 핵심 내용을 사실상 모두 배제함으로써 대법원 주도로 사법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정치권에 전달했다. 대법원 사법제도 개선안은 전국 5개 고등법원에 현직 법관과 원로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상고심사부를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상고심사제가 실시되면 무분별한 상고를 막을 수 있고, 한 해 1인당 평균 2700여건을 담당하는 대법관의 살인적인 업무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선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상고허가제가 실시된 적 있고, 이를 보완한 ‘심리불속행제도’는 지금도 시행되고 있어 상고심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대법원이 상고 허가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제도로, 헌법에 보장된 3심제를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에 따라 도입 9년 만인 1990년 폐지됐다. 9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심리불속행제도는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이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특정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으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단 형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치 상고심사제가 대법원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일 제도인양 선전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인사 독점권을 견제하려는 한나라당 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허점도 많다. 법원에 따라 유·무죄의 정반대 판결을 내린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재판에서 보듯 고법마다 상고 심사, 허가 기준이 제각각일 경우 사법불신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 상고심사에서 기각당한 국민이라도 상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놔 4심제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있다. 옥상옥을 만들어 가뜩이나 부지하세월인 재판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상고심사부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대법원 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양측이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사법 개혁은 백년하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