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김중수의 좌우명

입력 2010-03-25 19:42

주머니 속 송곳을 뜻하는 ‘낭중지추(囊中之錐)’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 ‘평원군열전’이다. 전국시대 조나라에서 재상까지 한 평원군은 수천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진나라가 쳐들어와 수도까지 포위당하는 위기에 처했다. 조나라는 초나라와 연합을 위해 평원군을 사신으로 보내게 되고, 그는 함께 갈 20명의 인재를 선발한다. 식객들 중 19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을 고민하던 중 ‘모수’라는 사람이 자천을 했다. 이때 평원군이 말했다. “인재는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 그 끝이 보이기 마련인데, 내 집에서 3년을 지내도록 이름을 모르니 자네가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 OECD 대사의 좌우명이 ‘낭중지추’라고 한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할 만도 하다. 한은 총재가 15번째 직책인데 가려고 해서 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스카우트의 연속이었고 그 중에 한은 총재를 비롯해 한림대 총장, 조세연구원장, KDI 원장 등 8개가 기관장이었다.

낭중지추를 좌우명으로 삼은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을 듯하다. 어찌 보면 겸손한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오만하기 그지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든 한 자리 해보려고 안간힘 쓰는 사람들을 그 한마디로 처량하고 한심하게 만드니 말이다.

오히려 그의 무색무취를 성공의 비결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는데, 김 내정자가 화려한 경력을 이어간 것은 ‘모’를 내지 않아 정을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연설에서 어머니가 남겨준 가훈이라며 한 말이 있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아라.”

한은의 독립과 관련한 그의 발언은 후자의 해석에 더 끌리게 한다. 총재 내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은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 독립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신문사가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그는 전문성에서는 높게 평가받은 반면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에서는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가 낭중지추 좌우명을 이쯤에서 버렸으면 좋겠다. 중앙은행 총재는 지금까지 지낸 직책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때론 인사권자와 ‘모’를 내야 국민이 편안해지는 자리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