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민주당이 버려야할 것

입력 2010-03-25 19:45


“보수는 결집하고, 진보는 분열중이니 한나라당에겐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칠웅(七雄)이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중국 전국시대, 진(秦)은 절대강자였다. 위(魏) 제(齊) 조(趙) 한(韓) 초(楚) 연(燕)은 독자적으로 진에 맞설 힘이 없었다. 그래서 6국은 소진(蘇秦)의 계책을 받아들여 진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합종책이다. 합종이 잘 유지됐던 10여년간 진은 동쪽 끝 함곡관 너머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6·2 지방선거는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다. 여당 지지표는 한나라당에 집중되는 반면 야권표는 이리 갈리고, 저리 찢길 게 확실하다.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처럼 여당 인기가 바닥이라면 야권이 분열돼 있어도 희망을 걸어볼 텐데 한나라당 지지율은 30∼4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최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한나라당 35.7%, 민주당 18.3%, 민주노동당 3.7%, 국민참여당 2.4% 순이었다. 야당 지지율을 몽땅 합쳐도 한나라당 하나를 못 당한다.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친이·친박의 내분, 여권 고위인사들의 릴레이 설화 등 표를 깎아먹는 악수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한나라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뭉쳐야 산다.” 이렇게 해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다섯 야당과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반한나라 범야권 단일후보를 내기 위한 ‘5+4’회담이 시작됐다. 이들은 연합공천을 통해 단일후보를 낸다는 대원칙에는 쉽게 합의했으나 ‘누구를 단일후보로 하느냐’는 지분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진보신당이 먼저 이탈했다. 노회찬 대표(서울)와 심상정 전 대표(경기) 가운데 아무도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자 판을 깼다.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 모두 국민으로부터 이미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은 진보신당의 쌍두마차다. 거기다 대중성과 득표력까지 겸비했다. 그런 이들이 경선을 거부하고 독자 출마하겠다는 것은 다른 야당에겐 “다 같이 죽자”는 것과 다름없다. 보수 분열은 막아야 한다며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에선 ‘한나라당과의 무조건 합당’ 얘기가 흘러나오는 마당이다. 보수는 결집하고, 진보는 분열 중이니 한나라당으로선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그러면 ‘4+4’회담(진보신당 이탈로 5+4가 4+4 형식이 됐다)이라도 잘 돼야 할 텐데 그마저 위태위태하다. 경기지사 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벌이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샅바싸움 때문이다. 민주당은 여론조사와 국민참여경선을 6대 4 비율로 후보를 선출하자는 입장인 반면 국민참여당은 100% 여론조사를 통한 선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국민참여경선은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강한 민주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지난 총선 대구에서 출마했던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가 약속을 어겨 빚어진 사단이다. 결과적으로 “대구를 지키겠다”던 그의 다짐은 빈말이 됐다. 이로 인해 기초단체장 후보 몇 자리를 양보하고 서울, 경기, 인천 시도지사 후보를 독식하려던 구상에 브레이크가 걸린 민주당은 유시민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총선 때 한 약속을 지키라는 압박이다. 보다 큰 정치를 위해 유 전 장관이 대구시장 선거에 나서는 것도 정치적으로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누구라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지사 후보 경선 룰 문제만 해결되면 야권의 단일후보 협상의 큰 걸림돌은 제거되는 셈이다. 후보 자리를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국민참여당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이다. 얼마 전 실시된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연합이 26개 주 가운데 23개 주를 장악했다. 제1야당 사회당이 다른 야당과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한 덕분이다. 작은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큰 것을 얻는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