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 유아원에 몰려드는 ‘민원 쪽지’

입력 2010-03-25 18:54

중국 난징(南京)의 한 공립 유아원 원장은 최근 800여장의 ‘쪽지’를 받았다. “이 아이를 꼭 좀 부탁합니다” 등 모두 입학 민원이다. 쪽지에는 성, 시의 고위직이나 중앙정부 관계자 등 주로 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유아원 리(李)모 원장 책상 위에는 흰색 노란색 빨간색 등 각양각색의 쪽지가 사전처럼 두껍게 쌓여 있다. 80명의 원생 모집을 앞두고 자녀 입학을 원하는 부모들이 힘 있는 사람들과의 ‘관시(關係)’를 총동원하면서 원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중국 현대쾌보가 최근 보도한 공립 유아원 입학 실태다.

이는 중국에서 일상적인 현상이다. 공립 유아원이 민영 유아원에 비해 비용도 싸고 교육의 질도 높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광저우(廣州)의 경우 1500개의 유아원 중 공립 유아원은 7%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부분 정부 관계자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다. 일부 돈 많은 가정의 경우 수백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기도 한다.

한 공립 유아원 전임 원장은 “공립 유아원은 정부의 감독과 함께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어 질적으로 좋고 비용도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주로 정부 기관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다”면서 “일반인들은 아무리 관시를 동원해도 자녀를 입학시키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우한(武漢)의 유아원 학비를 조사한 결과 공립 유아원의 비용은 민영 유아원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0개 민영 유아원에선 학기당 최저 1300위안에서 최고 1만 위안까지 다양했으며, 평균 비용은 4000위안(66만4000원)이었다. 반면 10개 공립 유아원의 학기당 평균 비용은 2000위안에 불과했다.

중국 언론은 요즘 유아 시절부터 교육 불평등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의무교육 범위 확대 등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유아 교육에서도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만이 공공교육 자원을 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80명 모집에 800개 쪽지, 그 배후에는 8000가지 사회적 아픔이 있다”고 꼬집었다.

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