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은 글쎄 일단 써보고!… 기업들 신입사원 선발 인턴제 확산
입력 2010-03-25 21:20
‘써보고 뽑는다.’ 대기업 신규인력 채용의 최신 트렌드다. 번드르르한 스펙(specification·자격증이나 영어 점수 등 외적 조건)에 속지 않고 진짜로 일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다.
“토익 만점짜리가 수두룩하지만 외국인 앞에선 영어 한마디 못한다.” “졸업을 늦춰가며 학점관리를 하다보니 눈앞의 숫자만으론 제대로 된 인재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대기업 인사팀 사이에 확산된 때문이다.
SK그룹은 다음달 5일부터 인턴사원 600여명을 선발해 이 가운데 현장에서 능력이 검증된 50∼70%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올해 신입사원 채용 예정인원(700여명)의 절반 이상을 인턴십을 통해 뽑는 셈이다.
SK는 스펙 대신 직무 전문성을 따져 인턴을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면접기간을 1박2일로 늘리고 영어 필기시험 대신 구술시험 성적을 제출하도록 했다. 선발된 인턴은 오는 7, 8월 각 관계사에 배치돼 2개월간 인턴십을 거친 뒤 정규직 전환 여부가 가려진다.
김영태 SK 기업문화부문장은 “좋은 학점과 영어 점수만으로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올해 뽑는 대졸 신입사원 250명 전원을 인턴십을 통해 채용하기로 했다. 500명의 인턴사원을 뽑아 6주간 실무에 투입한 뒤 합격점을 받은 절반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포스코는 이 방식을 23개 출자회사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CJ그룹은 올 상반기 인턴사원으로 지난해보다 2배 많은 200명을 뽑는다. 이들은 6월부터 8주간 현장에 배치되며 우수 수료자는 12월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 CJ 측은 “정규직 전환 비율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2001년 제도 도입 이후 평균적으로 80∼90%는 정규 직원이 됐다”고 말했다.
STX그룹은 상반기 600명의 인턴사원을 선발한 뒤 우수자를 하반기 신입사원으로 뽑을 계획이다.
KT도 고용 연계형 인턴제를 도입했다. 올 초 선발된 400명 가운데 100∼200명 정도가 정규직으로 회사에 남게 된다.
기업들은 기존 공채의 단점을 보완하는 채용 형태로 인턴-정규직 연계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한석 KT 인재경영실장(부사장)은 “심층면접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직원을 뽑아도 나중에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일부 섞이게 된다”고 말했다. 스펙이 화려해서 뽑았는데 조직에 적응을 못하거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 회사가 곤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뜻이다. 김 부사장은 “이런 단점은 고용 연계형 인턴제로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인턴제는 회사 입장에선 유용한 방식이지만 구직자에겐 부담이 크다. 정규직 입사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며, 어렵게 선발된 뒤엔 불확실한 신분으로 낮은 급여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인턴십 기간 동안 다른 취업 기회를 잃을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달 대학을 졸업한 송수정(24)씨는 “인턴을 취업에 필요한 스펙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기업들이 인턴십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한다고 하니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천지우 권지혜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