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지원비 가로채는 얌체 산부인과… 건보 비급여 진료비 올려 중간에서 챙겨
입력 2010-03-25 19:24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정부가 임신부에게 지원하는 돈을 일선 산부인과에서 교묘하게 가로채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계기로 산부인과들이 진료비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임신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서울 서초동 A병원은 25일 출산 전 진료 중 하나인 초음파 일반검사비용이 얼마냐고 묻자 초진은 23만원, 재진은 16만원이라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평가 결과 우수등급을 받은 이 병원이 2008년 12월 책정한 초음파 검사비는 초진 11만원, 재진 8만5000원이었다. 진료비 인상 이유에 대해 병원 측은 “말할 수 없다”며 얼버무렸다.
이 병원뿐이 아니었다. 본보가 복지부 평가 우수 등급을 받은 상위 57개 전국 종합병원 산전 초음파 비용 인상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운맘카드제도가 시행된 이후 초진비는 28곳, 재진비는 32곳에서 가격을 인상했다. 초진비를 올린 28곳은 2008년 12월 4만4450원에서 3월 현재 7만7892원으로 평균 3만3442원(75.23%)을, 재진비를 올린 32곳은 2만9644원에서 5만3281원으로 2만3636원(79.73%)을 인상했다.
초음파 검사는 임신 주수 확인, 태아 성장 관찰, 태아 질환 및 건강 진단 등을 위한 것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대표적 비급여 항목이다. 복지부는 이 같은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08년 12월부터 고운맘카드제도를 도입,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임신부에게 20만원을 지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신부의 산전 초음파 검사 횟수는 평균 10.7회에 달한다. 따라서 고운맘카드제도 시행 이전 총 31만7404원(재진비 기준)만 내면 됐던 초음파 비용이 올해는 57만106원으로 인상된 셈이다. 지원비 20만원을 빼도 2008년보다 5만2702원을 더 내야 한다.
같은 기간 또 다른 비급여 검사로 아이의 기형 여부를 알아보는 양수검사는 37곳에서 초진 비용이 올랐다. 인상액은 평균 59만6095원에서 73만7297원으로 14만1202원에 달한다. 재진 비용을 올린 38곳의 진료비는 62만2913원에서 80만5263원으로 18만2349원 증가했다.
정부는 고운맘카드 지원액을 4월부터 30만원으로 늘리고 2012년까지 50만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병원의 비급여 진료비 인상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없다. 지원금을 늘릴수록 병원 배만 불리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1월 의료법 개정을 통해 비급여 진료비를 개별 병원이 직접 고시토록 했다.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병원들은 최저와 최대가격 차이를 크게 설정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서울 하계동 B병원이 고시한 양수검사 가격은 60만∼90만원으로 가격차가 30만원에 달한다.
임신부 오모씨는 “정부가 고운맘카드제도를 시작한다고 하자 병원들이 비급여 진료비를 올리더니 이번엔 고운맘카드 지원비 인상 소식에 맞춰 담합하듯 또다시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우리나라는 출산까지 반드시 필요한 많은 진료들이 비급여 항목에 포함돼 있어 전체 출산 비용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비급여 항목 진료비 실태조사를 통해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웅빈 이용상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