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안정 등 숙제만 주고 수단은 하나도 안 주더라”… 이성태 한은 총재 송별 간담회
입력 2010-03-25 18:31
“중앙은행이 아주 고약한 처지다.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고 안정을 꾀하라고 하니 손발이 묶인 셈이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시장 안정 등을 위해 한은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총재는 25일 서울 소공동 한은 본관에서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선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인이 존재하는지, 커지는지 판단해야 하고,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면서 “중앙은행에 수단을 하나도 주지 않고 자산가치 안정과 금융안정 등 숙제는 많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 기능을 갖고 있지만, 금융안정 기능은 간단한 게 아니다”며 “금융안정을 위해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정부 자료라도 보완해 달라는 측면에서 조사권 얘기가 나온 것인데, 저쪽(금융위원회)에서는 조사를 감독으로 보고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특히 “(금융기관 등에) 긴급자금을 지원할 때 지금 구조에선 중앙은행이 아주 고약한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지원을 반대했다가 금융기관이 망하면 (중앙은행이) 책임을 다 져야 하고, 지원하면 돈은 중앙은행 돈인데 실질적 결정은 다른 쪽이 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또 금융통화위원의 임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이번에 금통위원 3명이 바뀌고 과거에도 금통위원 7명 중 4명이 한꺼번에 바뀌었다”며 “임기를 더 늘리고 1년에 1명씩 바뀌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에 “내 능력의 80%만 했다. 100%로 끌어올리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욕심을 키우지 않고 능력을 키워서 80%만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2분기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1분기와 같이 10조원으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실적에 연계해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시중은행에 자금을 배정해 주는 제도다. 시장에서는 넘쳐나는 시중자금을 줄이기 위해 금통위가 총액대출 한도를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다만 금통위는 31일 만기도래하는 정책금융공사에 대한 대출액 3조2966억원 중 은행자본확충펀드의 후순위채 매각분 2030억원을 차감하고 3조936억원만 재대출하기로 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