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금강산 부동산 조사… 南기업 볼모로 관광재개 압박 몰수보다 겁주기
입력 2010-03-25 19:56
북한이 25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에 대해 1주일에 걸쳐 조사하겠다고 통보한 것은 사실상 시간을 끌면서 남측 당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정부 소유 건물인 이산가족면회소를 조사 대상에 넣은 점은 정부에 대한 직접적 압박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지난 18일 통일부와 현대아산에 통지문을 보내 부동산 조사 입장을 밝히고 1주일 만인 25일 부동산 소유자들을 금강산관광지구에 소집했지만, 다시 31일까지 기업별로 조사하겠다는 일정만을 통보했다.
한 투자기업 관계자는 “북측이 관광지구 내 부동산 소유 현황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부동산 조사를 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일종의 요식 행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일연인베스트먼트 안교식 대표도 “이번 조사는 (부동산) 몰수보다는 관광 재개를 촉구하기 위한 실태조사였다”고 말했다.
북측이 시간을 끄는 이유는 단기간에 금강산 관광 사업 계약을 파기하기보다는 남측 당국의 태도에 따라 관광 사업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점을 위협하면서 기회를 엿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지난 4일 발표한 아태평화위 대변인 담화에서도 3월부터 개성지구 관광, 4월부터 금강산 관광의 문을 열어놓을 것이란 점을 천명한 바 있다. 바꿔 말하면 4월 말까지는 관광 사업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남측 당국이 소유하고 있는 소방서를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남측 당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북측은 다음달까지는 부동산 조사와 남측 인원 추방 등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투자 기업들을 통해 단계적으로 남측 당국을 압박하면서 상황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다음달 6자회담 재개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결정적 변수가 되고 있는 북핵 6자회담의 향배도 북측이 금강산 관광의 계약 파기 및 폐쇄 결정을 미루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미국 등 6자회담 관계국들은 다음달 12∼13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회담 재개를 위해 물밑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6자회담이 다음달 재개될 경우 남측 당국은 신변 안전보장 문제만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높고, 금강산 관광 사업은 폐쇄라는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 투자 업체들은 ‘관광 재개 촉구, 재산권 보장’이라는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방북했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부동산이 없다는 이유로 방북이 불허된 임대 업체 관계자 10여명도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 나와 근심 어린 눈으로 방북 장면을 지켜봤다.
고성=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