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게서 배워야할 위기극복의 지혜… ‘일본 재발견’

입력 2010-03-25 17:49


일본 재발견/이우광/삼성경제연구소

한국은 일본에 대해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기보다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한국의 산업화를 일군 윗세대는 일본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문화, 사회 시스템 등 모든 점에서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자라온 젊은 세대는 일본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삼성, LG 등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승승장구하는 사이 일본 기업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봤고, 일본사회가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는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일본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저자인 삼성경제연구소 이우광 수석연구원은 이런 상태라면 일본에 대한 연구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일본의 사회, 문화부터 기업, 전반적인 시스템까지 일본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일본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일본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폭락하면서 사회 전반이 얼어붙었다. ‘잃어버린 10년’의 후유증은 최근 일본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이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일본 젊은이들은 패배에 익숙해져 있다. 이른바 ‘하류(下流)’가 등장한 것이다. 의욕이 없다보니 학업에도 뜻이 없고, 막상 졸업을 하고 나서도 좋은 직장을 가지려는 생각이 없다.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어도 프리터족, 니트족으로 남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베 대지진(1995년), 아시아 금융위기(1998년). 9·11테러(2001년) 등 큰 사건을 경험하면서 자기방어적인 경향이 강한 일본의 젊은 세대는 소비도 최소한으로 한다. 결혼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안 한다. 초식남, 미니멀 라이프 등의 신조어는 이들의 생활상을 함축한 단어다. 하지만 이들에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자신을 위한 소비는 줄여도 사회공헌에는 열심이다. 이를 ‘소셜(social) 소비’라고 하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세계시장에서 도요타와 소니의 위치를 보듯 과거 일본을 대표했던 전자, 자동차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대신 고객에게 감동을 주거나 경영의 본질에 충실한 기업이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다. 직원 70%가 장애인인 문구업체 일본이화학공업주식회사, 인간본성에 대한 충실한 탐구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창출하는 위생도기 회사 토토(TOTO), 기업의 성장은 직원들의 행복의 합계가 커지는 것이라는 경영철학으로 운영되는 이나식품 등이 주목받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이슈가 되면서 자연히 각광받는 CEO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전자, 자동차 산업에서 유명 CEO가 많이 나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양산업인 의류업에서 최고의 부를 일군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대기업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경영을 실천하는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아키오, 일식 세계화의 주역 마쓰히사 노부유키, 무명의 구로카와를 최고의 온천으로 바꾼 고토 데쓰야 등이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리더로 꼽히고 있다.

일본은 고도성장과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일본 기업,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을 재발견했다. 일본 기업은 장기적, 안정적, 지속적인 거래를 하는데 이는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또 표준화 된 것이 아닌 용도에 따라 세밀하게 맞춰 나간다는 ‘스리아와세’,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쓰는 ‘의미있는 낭비’ 등이 일본의 경쟁력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으로 대표되던 일본식 시스템은 위기에 봉착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13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일본에서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쁘고 수입도 적다”는 게 요지다. 도쿄대 법학부생은 고위 관료가 되기보다 외국계 기업에 가길 원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2007년부터 SERICEO(www.sericeo.org)에 올린 글을 묶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