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내려 앉은 인천공항 … 59일 청소 대작전
입력 2010-03-25 18:06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2층. 승객들로 분주한 1층 도착장과 3층 출국장 사이 2층은 유니폼 입은 관계자들만 오가는 ‘항공사 사무실 구역’이다. 그곳 F존 팻말 뒤 화장실과 청소물품창고를 지나면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이 지키는 문 하나가 나타난다. 인천공항 뱃속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다.
해외여행깨나 했다는 당신. 공항이라면 동네 버스정류장만큼 익숙하다는 자타공인 코스모폴리탄도 들여다보지 못했을 인천공항의 속살이 그 문 너머에 있다. 드나드는 여행객의 짐이 목적지별로 분류되는 88㎞ 수하물 고속도로다.
인천공항에서 봄맞이 대청소가 벌어지고 있다. 2∼3월 59일간 인력 2160명과 장비 403대가 동원되는 대한민국 최대 청소 이벤트.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청소비용만 3억원이 든다. 여행 시즌을 앞두고 오랜만에 먼지 낀 뱃속까지 뒤집어 털고 닦으며 단장 중인 인천공항을 엿보고 왔다.
어둡고 거대한 ‘공항 뱃속’
지난 18일 오후 3시25분 공항 2층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은 문 앞에 섰다. 문턱을 넘는 절차는 복잡했다. 신분증과 보호구역방문출입확인서, 공항방문증을 제출했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다. 이번엔 생체정보를 요구한다. 최고 등급인 ‘가급’ 국가중요시설다운 보안이다. 문 왼편 스캐너에 손등 혈관을 등록했다. 그제야 문이 열린다.
공항 뱃속은 어둡고 거대하고 소란스러웠다. 우선 규모. 가로 1㎞, 세로 90m에 3층 높이 공간이다.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을 기준으로 하자면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 지점부터 면세점까지 구역을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뻥 뚫어 만들어놨다고 생각하면 된다. 골프카를 개조한 전용차량으로 노선을 따라 미로 같은 전체 구역을 한 바퀴 도는 데 꼬박 1시간이 걸린다. 상주하는 직원만 550여명.
공중에는 오른쪽에서 왼쪽, 다시 오른쪽, 왼쪽으로 폭 1m 안팎의 컨베이어 벨트가 구불구불 천장까지 이어져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항공기 화물칸까지 승객의 짐을 배달하는 일종의 화물열차. 움직이는 벨트의 소음은 꽤 커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 옆에 선 것처럼 귀가 먹먹해진다. 승객이 부친 모든 짐은 이곳 ‘수하물 처리 시스템(BHS·Baggage Handling System)’을 거쳐 목적지별로 분류되고 배달된다.
수하물 경로를 확인해봤다. 5분 전인 오후 3시20분 체크인 카운터에서 항공사 직원이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은 검은 가방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태국 방콕행 대한항공 KE651편에 실릴 가방의 여정은 제어실 중앙 컴퓨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방은 체크인 8분 뒤인 오후 3시28분 ‘CM○○○.BHT○○-HS○○○’ 벨트를, 다시 1분 뒤인 29분에는 ‘CM○○○.BID○○-BT○○○’ 벨트를 통과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일련번호가 붙은 1만개 벨트 유닛으로 구성된다. 벨트 곳곳에는 위치추적 스캐너 72개가 장착돼 있다. 스캐너가 가방에 부착된 행선지 인식표를 판독해 수하물 경로를 실시간 추적한 것이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다고 짐이 늘 같은 경로로 이동하는 건 아니다. A∼M(I 제외) 체크인 카운터마다 2줄씩 총 24개 컨베이어 벨트는 합쳐지고 분리되기를 반복하며 수십개 경로를 만들어낸다. 컨베이어 벨트의 한 구간에서 고장 또는 체증이 발생하면 수하물은 자동적으로 우회로를 택한다. 제어실에서는 CCTV 화면 36개를 띄워놓고 24시간 BHS의 교통상황을 체크한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초속 2m로 움직이던 컨베이어 벨트는 BHS 중간 지점을 통과하면서 초속 7m(시속 25.2㎞)까지 3배 이상 빨라졌다. 인천공항의 수하물 평균 운송시간은 탑승동까지 26분(여객터미널 탑승터미널까지 13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1년 3월 29일 인천공항 개항 이래 컨베이어 벨트는 7만8768시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한 루트에 문제가 생기면 대체 루트를 활용하며 지금까지 하루 9만∼11만개씩 2억개가 넘는 화물을 처리해 왔다.
이런 기록적인 운영에 필수적인 게 바로 빈틈없는 청소다. 컨베이어 벨트 작동의 최대 적은 고무벨트 뒤편에 붙은 이물질이다. 벨트를 움직이는 롤러 장애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관리 직원들은 고무벨트 뒷면에 고압분사기로 물을 뿜어 이물질을 떼어낸다.
18일 오후 작업장에서는 직원 두 명이 고압분사기로 벨트를 청소하고 있었다. 뒤편 건조장에는 세척을 마친 벨트 수십 롤이 널려 있다. 올봄 벨트 청소 목표량은 전체 컨베이어 벨트(88㎞)의 약 9%인 8㎞. 40m 고무벨트 한 롤을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안팎이다. 하루 10시간씩 60일(600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난달 시작된 벨트 청소는 이제 마무리 단계다.
지인열 운송설비팀 차장은 “다른 공항은 먼지가 끼면 벨트를 폐기하는데 인천공항은 2005년 벨트세척기를 자체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며 “3∼4년 쓰던 벨트를 5∼6년 이상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BHS 내부는 공항에서 먼지에 가장 민감한 장소 중 하나다. 컨베이어 벨트 롤러를 돌리는 모터의 쇳가루와 분진이 전자동 시스템에 쌓이면 고장과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늘 먼지와 전쟁 중이다.
직원들은 방진복에 사다리차와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먼지를 빨아들인다. 수하물 위치추적 스캐너 관리도 골칫거리다. 고가인 데다 손상되기 쉬워 붓으로 일일이 먼지를 떨어내거나 마른 걸레로 닦는다. 88㎞ 전자동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건 직원들의 눈과 손이었다.
대동맥 활주로 청소하기
공항의 주인이 승객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인천공항을 오가는 여행객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교통센터 주차장뿐이다. 공항 부지 2129만2000㎡(약 645만평)의 4%를 조금 넘는 92만3000㎡에 불과하다. 승객 출입이 통제되는 나머지 영역을 장악한 인천공항의 실세는 비행기다.
대당 1500억∼2000억원의 비싼 몸값 덕에 공항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는 비행기 눈높이에서 조정된다. 당연히 공항 청소에서 활주로 정비는 핵심이다. 항공기 이·착륙이 이뤄지는 1∼3활주로(총 연장 11.5㎞) 청소, 그중에도 비행기 바퀴에서 녹아내린 ‘활주로 고무’를 제거하는 작업에 가장 정성을 쏟는다.
270여t 보잉 747 여객기가 시속 200㎞로 착륙한다고 가정해 보자. 착륙 순간 바퀴와 활주로의 마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때 녹아내린 바퀴 고무는 활주로에 검은 자국(skid mark)을 남기고, 고무 자국이 두터워지면 마찰력이 떨어져 바퀴가 미끄러진다. 이런 고무를 제거하는 게 활주로 청소다.
올봄 고무 제거작업은 지난 1∼15일 실시됐다. 고무 제거 장비는 9억원짜리 고압살수차량. 바닥에 부착된 지름 0.02㎜ 노즐 28∼32개를 통해 활주로에 물을 분사한 뒤 떨어져 나온 고무를 물과 함께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1시간에 300m씩 느리게 전진한다.
성기광 토목시설팀 과장은 “생닭에 물을 뿜으면 뼈만 남을 정도의 수압으로 활주로를 씻어 고무를 떼어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1년 작업하면 30t 분량의 고무가 수거된다.
공항에 도로 표지판이 드문 이유
비행기가 오가는 공항 도로에는 도로 표지판이 없다. 고가의 항공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각(死角)이 많은 항공기가 이동하다 날개 등을 부딪치지 않도록 돌출형 표지는 최대한 줄인다. 상대적으로 차선의 중요성은 커진다.
24일 오전 인천공항 기반시설팀이 활주로와 유도로(활주로를 오가는 도로), 주기장(탑승 게이트 앞 항공기가 서는 지역) 등에서 도색차량을 이용해 차선을 새로 칠했다. 운전자가 큰 그림을 그리며 차량을 움직이면 뒤편의 보조가 버튼으로 세부 모양을 새기는 2인 1조 작업이다.
공항 도로 차선은 일반 도로보다 두껍고 크고 더 선명하게 칠한다. 차량보다 눈높이가 3∼4배 높은 항공기 기장석에서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페인트는 일반 도로의 배 이상 든다. 올봄 대청소 도색작업으로만 7만7360ℓ를 썼다.
공항에서는 강조하는 차선도 다르다. 가장 중요한 선은 노란 실선. 활주로 진·출입 항공기를 안내하는 선이다. 화물이나 서비스 차량(GSE·Ground Service Equipment)이 오가는 ‘GSE 구역’의 생명선은 지퍼 모양의 흰색 점선이다. 항공기 통과 구역이므로 이곳에서 차량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이찬호 기반시설팀 대리는 “공항에서 항공기와 차량이 만났을 때 주행 우선권은 무조건 항공기가 갖는다”며 “만약 항공기 기장이 진로 방해 차량을 관제탑에 보고하면 해당 차량에 즉각 업무정지 명령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더 분주한 공항의 밤
18일 밤 11시 작업복을 입은 청소요원 15명이 여객터미널과 탑승동을 잇는 지하터널에 나타났다. 좌우로는 바퀴 달린 살수장비를 끌고 있다. 셔틀트레인이 오가는 터널은 폭 5m, 높이 4.5m, 길이 1㎞. 낮에는 이런 터널 2개가 모두 가동돼 외국 항공사 승객을 실어 나른다. 이·착륙이 뜸한 밤 10시30분부터 새벽 5시30분까지는 하나만 사용한다. 쓰지 않는 터널에서 물청소가 시작됐다.
청소요원들은 줄지어 터널을 걸으며 고압살수기로 구석구석 물을 뿌려댔다. 전기를 공급하는 급전레일, 누전 방지용 애자(송전선 등에 사용되는 절연체), 바닥 콘크리트 주행면의 이물질을 씻어내는 작업이다. 오수는 100m마다 있는 하수구로 빠져나간다. 터널 하나를 씻어내는 데 대략 6시간 걸린다. 하룻밤을 꼬박 새야 한다.
셔틀트레인 닦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차량기지 앞에는 주유소 자동세차기를 두 배쯤 키운 크기의 트레인 세척기가 있다. 운행을 마친 셔틀트레인이 기지로 진입하자 길이 3m 솔 9개를 가진 이 세척기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솔이 돌고, 거품이 나고, 물로 씻어내는 과정이 주유소 자동세차기와 똑같다. 목욕을 마친 차량은 유지보수 요원 30명이 3교대로 근무하는 정비소에서 두드리고 조이는 점검을 받는다.
인천공항은 공식적으로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활주로,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셔틀트레인 어느 것도 완전히 멈추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야간에는 활주로 3개 중 1개를 포함해 공항 기능의 80%가 휴면에 들어간다. 김완길 IAT(Intra Airport Transit)팀 과장은 “공항 청소는 야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청소를 하는 봄의 공항은 밤이 낮보다 더 분주하다”고 설명했다.
머뭇거리는 봄을 기다리며
인천공항의 겨울은 질기다. 바다 때문이다. 대청소가 끝나가는 3월 하순에도 봄은 여전히 올 듯 말 듯 망설이고 있다. 22일에는 기껏 닦아 놓은 활주로에 눈이 쌓였다. 장비 창고에 들어갔던 제설차 7대가 다시 나왔다.
봄은 머뭇대도 봄맞이 준비는 이제 막바지다. 15층 아파트 높이의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교통센터 외벽 유리 7만2000장을 이미 한 차례씩 닦았다.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지붕을 반짝반짝 윤나게 문지르고, 교통센터 지하주차장 바닥청소도 끝냈다. 탑승교(Boarding Bridge) 130대와 검색장비 158대는 당장 쓰지 않는 것부터 털고 닦았다.
인천공항 봄맞이 대청소의 하이라이트는 이달 30일 펼쳐진다. 비행기 이동을 진두지휘하는 계류장 관제탑 청소. 먼지가 말끔히 제거된 관제탑 유리 너머로 3월 말 파란 하늘이 열리면 두 달간의 몸단장도 끝난다. 4월, 여행의 계절이다.
인천=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