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케네디 암살, 원자폭탄 개발·투하… ‘사건’ 뒤엔 언제나 두 가문이 있었다

입력 2010-03-25 18:09


제1권력/히로세 다카시/프로메테우스출판사

위세가 꺾였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미국은 세계 최고 강대국이다. 국제 정치는 물론 경제, 문화적으로 미국은 세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그래서 세계 대통령으로까지 불린다. 이런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존재할까.

일본의 논픽션 작가 히로세 다카시(67)는 그런 세력을 ‘제1권력’으로 지칭하며 대표적 재벌 가문 모건 가와 록펠러 가를 미국을 움직이는 세력으로 지목한다. 이들은 어떻게 20세기 미국의 전반을 지배해 왔을까.

모건 가는 19세기 중반 J.P. 모건 1세가 런던에 설립한 금융회사를 모태로 출발해 미국은 물론 세계의 금융계를 장악한 미국의 거대 재벌이다. 록펠러 가는 J.D. 록펠러가 설립한 석유회사에서 시작해 미국 산업계를 좌우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가문으로 모건 가와 함께 미국 경제를 양분하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케네디 암살사건, 석유파동, 원·수폭의 개발과 투하, 유럽의 핵배치 등 20세기의 중요한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의 가계도, 연관을 맺고 있는 기업 및 단체 등을 추적해 그들 뒤에 두 가문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모건 가문과 록펠러 가문은 남북전쟁 때 총을 매점매석하고 군수물자 운송 및 판매, 금 투기 등으로 큰 돈을 벌었다. 후손들은 선대가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각각 금융업과 석유사업에 뛰어 든 뒤 다른 분야를 차례로 잠식해 들어갔다. 1983년 미국 매출 10위권 기업들의 ‘진짜 주인’들은 모두 모건과 록펠러 가문 출신들이었다.

저자는 두 가문이 미국의 전 분야를 장악했으며 이들을 제어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이들에 맞섰다가는 암살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에도 두 가문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1962년 모건-록펠러연합 계열인 US스틸과 베들레헴스틸이 철강가격 인상을 결정하자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이들 기업에 주문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비극이 싹텄다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반격에 이들 기업들은 슬그머니 철강가 인상을 철회했지만, 모건상사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환율 조작으로 다음 달 뉴욕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 그런데도 케네디가 물러서지 않자 이번에는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암살자를 통해 응징했다는 것이다. 암살건은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이 사건을 수사했던 FBI의 감독관이 에드워트 피어폰트 모건이며, 대통령특명조사위원회 구성원들도 모건 가문, 록펠러 가문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배후에 두 가문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한 미국의 지휘관들 중에도 두 가문과 관련된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핸리 스팀슨 육군장관은 JP모건이 설립한 모건상사의 고문변호사였고, 아이젠하워 연합군 최고사령관과 포러스틀 해군장관, 마셜 육군참모장, 맥아더 장군 등도 모건 가문과 관련된 기업들과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주도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건과 록펠러 가문은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전쟁 개시 두 달 뒤에 미국의 무기 수출이 허용돼 모건, 록펠러, 듀폰의 공장들이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주역도 두 가문 인물들이었다.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전면적 군사개입을 주장하고, 하원에서 북폭을 인정하는 결의안 제출을 주도한 이는 토머스 E 모건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에게 베트남에 개입하라고 권고한 딘 러스크 국무장관도 록펠러재단 이사장 출신이다. 베트남에 지상군 파병 필요성을 케네디에게 진언한 당시 로버트 S 맥나라마 국방장관도 모건-록펠러 연합체인 포드자동차의 사장이었다.

저자는 노벨상도 두 가문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나 바웬사 등 충분히 자격이 있는 인물들이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전범이나 다름없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각료들에게도 노벨상이 돌아간 배경에는 모건-록펠러연합이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동맹을 맺고, 때로는 암투를 벌이면서 식량 정치 군사 언론 사법 수송 과학 기술 등 미국의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모건과 록펠러 가문을 ‘제1권력’이라는 말 외에 달리 부를 방도는 없는 듯하다. 파편처럼 흩어져 무관한 듯 보였던 각각의 사건과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추적해 들어간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대독점 자본이 미국 권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규원 옮김. 2만5000원.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