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이웃-영락교회(3)] 복지재단내 시설 13곳… 한경직 목사 유업 잇는다
입력 2010-03-25 20:05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한 고아원에서는 좋은 시설과 음식, 장난감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았고 죽는 아이까지 생겼다. 유엔에서 의사들이 파견돼 어린이를 진단했는데 처방은 간단했다.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좀 더 안아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라는 것이었다. 이대로 하자 아이들은 금세 건강을 되찾았다.
그와 비슷한 시기인 1939년 대한민국 신의주, 어린이 30여명이 생활할 수 있는 작은 고아원을 개원하며 한경직 목사(1902∼2000·당시 신의주 제2교회 담임)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영혼은 무엇보다 애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 애정을 받을 수 없게 된 어린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불우한 어린 ‘복순이’를 돌보고자 시작한 이 집이 이제 더 많은 아이를 품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웃을 보살핀다는 뜻에서 ‘보린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때 한 목사의 나이 37세.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지 6년 된, 당대의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그러나 한 목사는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웃을 돌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신의주 보린원에서 시작된 한 목사의 복지 사역은 45년 월남 후 서울에 보린원을 재건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51년 우리나라 최초의 모자 시설인 ‘다비다 모자원’을 부산에 설립하고, 52년에는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을 위한 시설인 ‘영락경로원’을 서울 돈암동에 열었다.
교회의 복지사업 사례는 당시에도 몇몇 있었지만 영락교회의 특이한 점은 57년에 벌써 서울시로부터 ‘재단법인 영락원’(현재의 영락사회복지재단) 설립 인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후 경로원은 하남으로 이전돼 노인전문시설로 발전했고 ‘영락모자원’ ‘영락보린원’으로 이름을 바꾼 두 시설도 증축, 신축 등으로 확대됐다.
81년에는 관악구청에서 재단에 유아원의 위탁운영을 제의했다. 70년대 청계천 및 이촌동에서 이주해 온 철거민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시설인데 아무도 맡겠다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한 목사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교육과 보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수락, ‘합실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90년에는 역시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 아이들을 위한 영락어린이집을 개설했고, 94년에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영락애니아의집’을 열었다.
현재는 영락경로원 안에 요양원과 가정봉사원파견센터, 노인주간보호센터도 운영되고 있어 재단 내의 시설 수는 총 13개, 이용자는 670여명이다. 교회가 만든 복지재단으로는 비교 대상이 없는 최대 규모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단순히 모아둔 듯도 하지만 교회 입장에서는 보살핌이 필요한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하나씩 개설해 왔다는 의미가 있다. 안순근 재단 이사장(영락교회 장로)은 “재단은 독립체로서 수익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교회와 유기적 연결을 토대로 초창기의 ‘가난하고 낮은 자를 위한 긍휼’ 실천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의 복지 정책이 확대되면서 국고 보조금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영락교회가 10% 정도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건물 신축과 증축 등 비용을 거의 부담하고 있다.
교인들의 애정도 깊다. 영락교회 교인 4300여명으로 구성된 후원회가 연간 8억∼9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각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교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보린원 아이들 전원이 영락교회 교회학교에서 일반 학생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점, 모자원 여성들이 교회 식당 등에 우선 취업되는 점 등도 재단에 대한 교회의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영락경로원 내에 치매와 중풍 환자 전문요양원을 짓고 있는 재단은 앞으로 청소년수련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종합사회복지관, 호스피스 시설 등을 신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재단 담당 조철한 영락교회 부목사는 “한 목사님께 ‘긍휼히 여김 받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와 재단의 주축”이라며 “재단을 통해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경험을 나눠줌으로써 복음의 씨를 뿌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