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규환 (12) 의사 친구 수술 도움으로 ‘제2의 생명’ 얻어
입력 2010-03-25 18:28
의사 고창준 박사는 내가 처음 장애인 시설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열렬히 반대했던 친구 중 하나였다. 그의 의견들은 오늘날 천사원의 모습을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그가 그토록 반대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일을 자칫 쉽게 생각하고 덤볐다가 큰코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 박사 역시 학창시절 집안이 어려웠다. 그는 어렵게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그리고 군의관으로 있을 때도 꾸준히 천사원에 자원봉사를 왔다. 그는 평생의 친구이자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1994년 말이었다. 기침이 계속 났는데 ‘이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으로 방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갔다가 숨이 차서 기침을 했는데 손수건에 피가 묻어 나왔다. 세브란스 병원에 열흘을 입원했다. 각종 검사를 다 했는데도 병명을 알 수 없었다. 다만 폐에 작은 혹 같은 것이 보인다는 진단이었다.
담당의사는 결핵이나 암, 둘 중 하나라는 소견을 냈다. 내 생각에도 결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암이라는 말인데…. 그 무렵 가까운 목사님이 암 수술을 했다가 도리어 수명을 재촉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퇴원을 했다. 아내의 동의도 구했다. 만약 암이라면 수술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대로만 살겠다고.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성탄 분위기에 들뜬 천사원 아이들을 보는 심경이 남달랐다. 얼마나 더 살게 될까?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 고 박사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수술을 해야겠다며, 내 의견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수술 예약을 했다. 일단 수술을 해 봐야 병명을 알고 정확한 치료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결국 며칠 뒤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보다 20년 전 맹장 수술을 받을 때에는 ‘아, 이제 죽는구나.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었다. 나중에 고 박사가 “맹장 수술로 죽는 사람이 어딨나”라며 웃어 넘겼지만, 난생 처음 받는 수술이라 그랬는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병명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큰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도리어 편안했다. 죽어도 하나님의 뜻, 살아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기로 했다. 수술은 8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폐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이었다.
알고 보니 내 병은 국균종 감염이었다. 폐에 있던 그것이 암 세포가 아니라 곰팡이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균이 기도까지 감염돼 치료할 도리가 없을 터였다. 내가 입원했을 당시에도 같은 병을 앓던 사람이 결국 사망했다고 들었다.
수술 후 입원해 있으면서 나는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천사원 출신 아이들이 앞 다퉈 병실을 찾아왔다.
“원장님, 적은 액수나마 치료비에 보태세요.”
“꼭 건강해지셔야 합니다. 저희들한텐 원장님밖에 없어요.”
나중에 다 모이고 보니 1500만원 정도 됐다. 세브란스 병원 측에서는 입원비도 면제해 줬다. 아이들이 가져온 돈은 고스란히 천사원에 기부했다.
건강을 되찾은 나는 내게 생기는 돈은 모두 남을 위해 쓴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 삶을 허락해 주셨으니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