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콘테스트 우승 히사 히랄, 극단 이슬람에 하이킥… 주부詩人 ‘영광과 시련’
입력 2010-03-24 21:42
“악은 파트와(이슬람법에 따른 명령)에서 비롯되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덮은 검은색 아바야(abaya)를 입은 채 눈만 내놓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부 히사 히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詩)는 거침없었다. 권력을 잡고 있는 무슬림 성직자들이 파트와 같은 종교적 칙령을 통해 사람을 겁주고, 평화를 갈구하는 이들을 사냥한다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정면 비판했다.
낭송이 끝났을 때 청중은 환호했다. 심사위원들은 최고 점수를 주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작되는 아랍판(版) 스타 발굴 TV 리얼리티프로그램인 ‘백만인의 시인(Million’s Poet)’의 지난주(17일) 우승자 히랄이 아랍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대학 문턱도 못 가본, 네 아이의 엄마인 히랄은 아랍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영국의 평범한 노처녀 수전 보일이 ‘브리튼즈 갓 탤런트’ TV 쇼프로그램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것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사우디판 수전 보일’이 더욱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살해 위협에도 신념을 꺾지 않는 당당함 때문이라고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이 24일 보도했다.
아랍 전통시 나바티의 콘테스트에서 출전자들은 으레 유목민인 베두인의 아름다운 삶을 읊거나 통치자들의 영광을 노래했다. 히랄은 달랐다. ‘파트와의 대혼란’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랄히 비꼬았다. 자살폭탄조끼 테러범을 ‘죽음의 벨트를 찬 눈먼 야만인’이라고 표현했다.
심사위원들은 히랄을 “용기 있는 시인”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아주 정직하고 힘 있게 표현했다”고 극찬했다.
고국 사우디에서 히랄은 엄청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슬람 무장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메시지가 게시되는 웹사이트 ‘아나 알 무슬림’엔 살해 위협 글이 올랐다. 그녀의 주소를 묻는 글도 있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히랄은 살해 협박에 대해 “남편도, 나도 두려워한다”면서도 “숨을 정도는 아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또 “이슬람 극단주의와 싸우고 싶다. 수년 전만 해도 사회는 개방적이었지만 점점 갑갑해진다. 어떤 남자들은 여성과 악수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랄의 시낭송은 사우디 성직자 압둘 라흐만 알바락이 지난달 파트와를 선포한 뒤에 이뤄져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용은 교육 현장이나 직장에서 남녀혼성 금지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하라는 요구였다.
파트와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히랄의 의식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