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아내·아이들 美로 갔는데… ‘신호 포착’ 믿고 울릉도서 찾아 헤매
입력 2010-03-24 21:41
울릉도를 뒤질수록 아내와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임모(42)씨는 지난달 5일부터 7일까지 통신업체의 도움을 받아 첫째 아들 휴대전화 위치를 다섯 번 확인했다. 결과는 울릉도만 가리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임씨에게 통신업체 상담원은 “위치 추적 결과는 틀릴 수 없다”며 “사람은 없어도 휴대전화는 울릉도에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가 잘못된 사례는 알려진 적이 없었다. 통신업체는 자신만만했다.
지난달 1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안산시 사동 안산상록경찰서. 임씨가 찾아와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자신과 다툰 아내 신모(38)씨가 5세, 10세인 아들 둘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임씨는 설명했다. 날이 저물어도 신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흘 후 임씨와 경찰은 통신업체에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의뢰했다. 경북 울릉군 저동 부근에 세워진 SK텔레콤 기지국이 첫째 아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신호를 잡았다. 5일 오후 4시쯤이었다.
안산상록서는 소방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6일 오후 울릉군 도동 울릉119안전센터에 신씨와 아이들을 찾아 달라는 공문과 신씨 모자 사진이 도착했다. 센터는 울릉경찰서와 협조해 수색에 들어갔다. 울릉서 경찰은 배를 타고 경북 포항시 항구동 여객선터미널까지 갔다. 포항여객선터미널은 겨울철 울릉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이다. 날씨에 따라 200∼700명씩 타는 배는 오전 10시 하루 한 번만 뜬다.
경찰은 실종 당일부터 6일까지 울릉도행 배를 탄 승객 명단을 넘겨받아 확인했다. 수백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가운데 신씨는 없었다. 개찰구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도 다시 돌려봤다. 배에 오르려면 표를 끊고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남편 임씨가 함께 확인했지만 신씨를 닮은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임씨는 통신업체에 위치 추적을 다시 요청했다. 휴대전화 신호는 여전히 울릉도에서 잡혔다.
울릉서는 소속 경찰 60여명 가운데 50여명을 투입, 울릉도를 샅샅이 뒤졌다. 서에는 행정과 민원 업무를 볼 최소 인원만 남겼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호텔부터 민박집까지 숙박업소마다 찾아가 신씨 모자 사진을 내밀었다. 검문검색을 강화했고 이장들에게 부탁해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닮은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신씨는 아니었다. 경찰은 해안도 수색했다. 신씨가 바다로 뛰어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장인수 울릉서 경무과장은 24일 “여기는 사건이 많지 않아 다들 주말도 없이 ‘세 모자 실종 사건’에 매달렸다. 넓은 동네가 아니어서 그 정도면 숨을 데가 없는데 흔적도 안 보여 애 먹었다”고 했다.
경찰이 “신씨 모자는 울릉도에 없다”고 결론지을 무렵이던 지난달 8일 밤. 미국 국가번호가 찍힌 국제전화가 임씨에게 걸려 왔다. 아내 신씨였다. 신씨는 언니가 사는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남편과 싸운 신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 다음날인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당신을 찾아 울릉도까지 갔었다”는 남편 말에 신씨는 “우리는 울릉도 근처도 안 갔다”고 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로 처음 드러났다. 뉴욕에 있던 휴대전화의 신호가 울릉도 기지국에서 잡힌 원인을 통신업체도 설명하지 못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기는 처음”이라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창욱 김수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