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이웃들, 쪽방촌 4쌍 위해 무료 결혼식 “더 어려운 이와 더 많이 나누는 축복의 통로되길”
입력 2010-03-24 18:03
김상원(47·가명)씨는 턱시도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지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부인 홍순희(41)씨와 1년여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김씨가 홀로 키우던 딸과 아들에 홍씨를 더해 네 식구가 서울역 근처, 흔히들 말하는 ‘쪽방촌’에 머물고 있다. 부부는 직업이 없다. 정부로부터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이 수입의 전부다. 당연히 결혼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데 혼인신고도 하고 정말 잘 살아야죠. 하나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삶이 바뀌고 있습니다.” 듬성듬성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김씨가 웃었다. 그의 여덟 살 난 아들이 “엄마”하며 달려오더니 웨딩드레스 차림의 홍씨에게 매달렸다.
23일 오후 7시 서울 남대문로 5가 남대문교회 예배당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소망을 찾는 이’를 통해 자립을 꿈꾸고 있는 부부 4쌍의 무료 합동결혼식으로, 이들은 노숙자였거나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이다. 소망을 찾는 이는 서울역 노숙자와 인근 쪽방촌 사람들의 영적·경제적 회복을 돕는 기독교 공동체다.
웨딩촬영부터 화장, 의상, 신부 부케, 예식장 꽃 장식까지 모든 결혼식 준비는 크리스천 기업인 ‘나사렛웨딩 & 출장부페’를 중심으로 뮬란 스튜디오, 한희철 에스떼띠까, 세레모니아 웨딩드레스, 뜨락 등 협력업체들이 나눠서 담당했다. 소망을 찾는 이와 나사렛웨딩은 2006년 11월에도 비슷한 처지의 부부 4쌍의 합동결혼식을 열었었다.
하객들 가운데 가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랑 신부 대부분이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랑 부모 석에 어머니 1명, 신부 측에 어머니 1명만이 앉았다. 대신 소망을 찾는 이 식구들과 쪽방촌 이웃 등 100여명이 모여 축하했다. 2006년 합동결혼식을 올린 4쌍 중 3쌍도 함께했다.
소망을 찾는 이의 김용삼 목사는 주례사에서 “부부는 땀 흘려 일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식들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목사는 “이들의 과거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수 있지만 지금은 4쌍의 부부 모두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배식 봉사에 나서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대문교회 손윤탁 목사는 “125년 전 앨런 선교사가 제중원을 세우고 예배를 드리며 시작된 이 교회에서 뜻깊은 예배와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돼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했다.
신랑 오윤수(38)씨에게 이날 결혼식은 더욱 각별했다. 그는 벌금 320만원을 미납했다가 결혼 며칠을 앞두고 체포돼 구치소 노역장에 유치됐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결혼식에는 참석했지만, 신혼여행 뒤 다시 노역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사님이 도와 주셔서 머물 곳도 마련했는데 신부한테 미안해요. 풀려나면 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아내를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4쌍의 부부는 24일 제주도로 2박3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소망을 찾는 이와 남대문교회 등이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지원했다. 그렇게 나눔의 손길들은 4쌍의 가정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있었다.
글·사진=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