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도요타病과 도요다 사장
입력 2010-03-24 18:13
삼성 그룹은 도요타가 겪고 있는 위기가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를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톱 기업의 위기를 보면서 이 회장과 그룹 간부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삼성이 배워야 할 도요타 위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제품의 질에는 경영의 질이 나타난다고 한다. 1000만대 넘는 자동차를 리콜한 도요타의 문제는 비용 절감과 품질을 양립시키지 못한 경영 실패라는 게 중론이다. 공교롭게도 창업자 집안에서 14년 만에 사장이 나오자마자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오너 경영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2009년 6월 취임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54) 사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글이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4월호에 실렸다. 기고자는 아사히신문 시절부터 15년간 도요타를 취재한 프리랜서 기자 이노우에 히사오. 도요타의 환부(患部)는 깊었다.
도요타 경영진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난 계기는 리콜 사태 이후 일련의 기자회견 소동. 첫 번째 회견에 부사장이 나와 기자들 질문을 도중에 끊고 자리를 떴다. “사장은 어디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도요다 사장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내용 없는 사과성 발언만 거듭되다가 세 번째 회견에서 미국 하원 청문회 출석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도요다 사장은 “본사에서 백업(back up)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역풍을 맞아야 했다. 도요다 사장은 청문회에서 “도요타에는 ‘문제를 신속하게 보고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가”라고 추궁 받았다.
도요다 사장은 게이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 밥슨 칼리지에서 MBA를 땄다. 미국과 영국 금융기관에서 2년간 근무한 뒤 1984년 도요타에 입사했다. 평사원 시절에는 자신을 일반사원과 똑같이 대우하고 철저하게 지도하는 상사를 신뢰하고,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을 싫어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호오(好惡)가 극단적이어서 ‘아니다’라고 판단한 사람은 일찌감치 포기한다고. 그래서 사장에게 찍하는 것을 두려워해 누구도 솔직한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장에게 문제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부하들은 오너 경영인을 보호하려다 오히려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오쿠타 히로시 전 도요타 회장은 과거에 “도요타의 적(敵)은 도요타”라고 말했다. ‘도요타병(病)’은 소비자와의 괴리, 희박한 위기의식, 오너 과잉보호로 요약될 수 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