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격 경영복귀] “지금이 진짜 위기… 삼성도 어찌될지 몰라”
입력 2010-03-24 21:52
이건희(68) 전 삼성그룹 회장이 24일 경영에 복귀했다. 비자금 특검수사로 퇴진 발표를 한 지 1년 11개월 만이다. 복귀의 일등공신은 ‘위기’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사태도 이 회장 복귀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회장은 지금 상황을 ‘위기’로 진단한 것이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인 이인용 부사장은 이날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해 달라는 삼성 사장단협의회 요청을 숙고한 끝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기로 했다”며 이 회장의 이 같은 말을 전했다. 삼성 사장단이 이 회장의 복귀를 요청한 지 한 달 만이다.
삼성 사장단은 지난달 17일과 24일 회의에서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사업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경륜과 경험이 절실하다고 판단, 복귀요청 건의문을 만들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 회장에게 전달했다.
사실 이 회장의 경영복귀는 예정된 일이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계 일각에서 ‘오너경영’을 강조하면서 이 회장 복귀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삼성그룹 내부에서 이 회장의 경영복귀 필요성을 반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삼성은 그러나 이 회장이 당분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념할 것이라며 선을 그어왔다.
이 회장의 경영복귀가 예상보다 빨라진 데는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사면 후 처음으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 참석, “10년 전 삼성은 현재의 5분의 1 크기의 구멍가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며 ‘위기론’을 제기했다.
도요타자동차 리콜사태는 삼성의 위기의식을 더욱 고조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사장단회의 때 도요타 사태가 심각하게 불거져 있었고, 회사가 잘 되고 있었지만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던 시점이라 몇몇 사장들이 본격적으로 (이 회장 경영복귀를) 얘기해보자고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조기 경영복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비자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한 지 채 2년이 안 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회장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책임경영을 거론하지만 이는 복귀를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함에 따라 삼성은 투자나 사업조정 등 의사결정과정에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1993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비롯, “한 명의 천재가 만명,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경영론’, “5년, 10년 뒤 뭘 먹고 살지 준비해야 한다”는 ‘준비경영론’, ‘샌드위치론’, ‘창조경영론’을 경영화두로 던졌고 그때마다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따라서 이번 경영복귀 후 승부사 이 회장이 삼성의 한 단계 도약과 위기돌파를 위해 어떤 장기비전을 제시할지도 주목된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