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맥심커피배 8강전 ● 박영훈 9단 ○ 유창혁 9단

입력 2010-03-24 18:11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웬 삼월 막바지에 폭설이란 말인가. 3월의 봄눈 치고는 좀 많은 듯싶다. 넓은 창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눈을 보면서 “어제는 강풍이 불다, 황사였다, 오늘은 폭설이었다, 이게 뭔 일이래”라며 한마디씩들 한다. 정말이지 최근 날씨는 싱숭생숭한 내 마음만큼이나 종잡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예측되어지는 일상도 나쁘진 않지만 한번씩 주어지는 이벤트도 나쁘진 않다.



오늘 소개할 깜짝 한 수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제보 받은 바둑이다. 바둑TV를 보고 있는 중인데 진짜 좋은 수를 봤다며, 그 수를 보자마자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나중에 기보를 찾아보니 그 수를 콕 집어 주지 않았어도 어떤 수를 말하는지 대번에 알아 챌 수 있는 수가 보인다.

유창혁 9단과 박영훈 9단의 맥심커피배 8강전 대국. 박영훈 9단을 평소에 보면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데 그 탓인지 어떤 탓인지 유독 이 기전에 강한 느낌이다. 초반 서로 기세를 굽히지 않으며 커다란 모양 하나씩을 구축한다. 백 모양이 조금 더 컸는지 백이 우세한 형세로 흘러간다. 유리한 백은 느긋하게 두어가고 흑은 한 집이라도 득을 보기 위해 치열하고도 또 치열하게 노리며 시도를 하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실전도의 상변 흑1로 끊은 수는 수를 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끝내기 몇 집이라도 득을 보자는 수다. 나중에 백이 다 놓고 따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실전도의 흑1로 끊은 다음부터는 백14까지 거의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다음에 나온 참고도의 흑1은 두어지고 나서도 의도를 알아채기 쉽지 않은, 웬만해선 떠올리기 쉽지 않은 깜짝 놀랄 수였다. 이 붙인 수는 흑의 수를 늘려 백에게 ‘놓고 땀’을 강요시키겠다는 의도다.

백a로 받으면 흑2로 단수치고 백b로 이을 때 흑3으로 이어 c의 곳이 자충이 되어 흑의 수가 한 수 는다. 어쩔 수 없이 백은 참고도의 백2로 받았지만 이 수 또한 흑3을 선수하고 흑5로 한 집을 내어 결국 백은 나중에 자신의 집에 돌을 메우고 놓고 따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깜짝 한 수로 인해 결과는 얄밉게도 흑 반집승. 아, 정말 이런 상황이야 말로 백에게 있어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닌지, 이런 식으로 지는 순간 엔 정말이지 홍두깨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다. 창밖에 내리던 눈이 슬슬 잦아들고 있다. 아무리 꽃샘추위도 좋고 삼월의 눈도 좋다지만, 이 봄날, 겨우내 싹 틔워내신 새싹님들, 부디 무사하소서.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