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동양평화 신념 日 어린이들 제대로 배웠으면…”

입력 2010-03-23 19:48

23일 오전 11시45분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입구.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세 명이 168㎝, 52㎏의 50대 일본 남성을 환한 미소로 맞았다. 남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한국을 도보 순례한 데라시타 다케시(57)씨. 그를 마중한 사람은 안 의사의 친손녀 안연호(73) 할머니, 외손녀 황은주(82) 황은실(79) 할머니였다.



남자는 수줍은 얼굴로 할머니들의 손을 붙잡고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황은주 할머니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의거를 했던 안 의사 뜻을 일본사람이 조명해주니 유족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일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19년간 평화운동가로 일하다 퇴직한 데라시타씨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 의사에 대한 추모를 직접 실천하겠다”며 의거 100주년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25일 총 2500㎞의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그는 안 의사의 글과 그림이 보관됐던 일본 미야기현의 사찰 구리하라시를 시작으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까지 일본의 12개 현 약 1800㎞를 걸었다. 이후 지난 2월 22일 부산으로 입항해 임진왜란의 흔적이 있는 진주, 순천 등을 거쳐 22일 서울에 도착했다. 700여㎞나 되는 한국 순례 도중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안 의사의 뜻을 기리기도 했다.

그는 14㎏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하루 8시간씩 평균 27㎞ 남짓의 거리를 91일간 걸었다. 도보 순례 중 체중이 3㎏이나 감량됐지만 한·일 우호관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집념으로 강행군을 이겨냈다.

이날 한국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개최한 환영식에서 그는 “안 의사에게서 전해 받은 평화에 대한 신념 덕에 순례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며 “일본 어린이들이 역사에 대해 바로 알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데라시타씨는 24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를 찾고 26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순국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순례 일정을 끝낸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