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찰 또 유찰… 거품 빠지는 대형 아파트
입력 2010-03-23 23:43
“14억523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지난달 22일 서울 자양동 동부지방법원 경매법정. 3차례나 유찰된 서울 신천동의 주상복합아파트 ‘롯데캐슬골드(전용면적 166.7㎡)’가 감정가의 60.5%에 낙찰됐다. 감정가 24억원짜리 아파트가 무려 10억원 가까이 떨어진 가격에 팔렸다. 앞서 지난 1월 중순에도 같은 면적의 롯데캐슬골드는 3차례 유찰을 거쳐 감정가보다 7억여원이나 떨어진 14억100만원에 낙찰됐다. 3.3㎡(평)당 전세금도 대형 아파트가 중소형 아파트보다 낮아졌다. 고가 아파트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고급 아파트의 ‘굴욕’=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형(85㎡ 초과) 아파트들이 외면당하고 있다. 경매는 물론 일반 전세시장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하다. 특히 경매시장에 나온 주상복합 아파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대표적인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고가의 주상복합이 유찰을 거듭하면서 낮아진 선호도를 반영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정자동 파크뷰(전용면적 182.2㎡)는 지난달 1일 경매시장에서 두 번 유찰된 끝에 감정가 24억원보다 약 23%나 낮은 18억5100만원에 낙찰됐다.
다음달에는 서울 신천동 롯데캐슬골드(188㎡) 2가구를 비롯해 서초동 아크로비스타(177㎡) 등 2∼3차례 유찰된 물건이 적게는 2억여원, 많게는 13억원 가까이 떨어진 가격에서 줄줄이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다.
23일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주상복합의 평균 낙찰가율은 78.3%로 일반아파트(84.9%)보다 6.6% 포인트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 외면 중소형 선호’ 현상은 전세시장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급기야 중대형과 중소형 간 전세가격(3.3㎡ 기준)의 역전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대형 전세물량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던 강남권 아파트마저 가격 역전세를 보이고 있다는 데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서울 서초구의 중형(60∼85㎡) 3.3㎡당 평균 전세가격은 1013만원으로 대형(85㎡ 초과) 평균인 1012만원을 넘어섰다.
서울 서초동의 L부동산 박모 사장은 “중소형과 중대형 모두 전세가격이 1억원 정도 올랐다”면서 “가격 상승폭으로 따지면 중소형이 중대형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송파구도 중형과 대형 아파트 간 평균 가격이 100만원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다.
강남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소형(60㎡이하) 가격이 중형대를 넘어 대형 평형대까지도 앞서고 있다. 강북구의 경우 3.3㎡당 소형 평균 전세가격은 514만원으로 중형(486만원)과 대형(437만원)을 모두 넘어섰다. 관악구도 소형 가격이 646만원으로 중형(594만원), 대형(543만원)을 앞질렀다.
◇대형 ‘버블 붕괴’ 신호탄인가=대형 아파트 외면현상은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있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수요자들이 ‘실리형’을 좇아 중대형(주상복합 포함)보다는 관리비 등 부담이 적은 중소형으로 몰리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또 가족 구성원이 줄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대형보다는 중소형을 선호하는 주택 트렌드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특히 국내 주택시장의 경우, 4∼5년 전 중대형 규모의 아파트와 주상복합 붐이 일면서 이에 따른 공급과잉이 중대형 주택에 얹힌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강남 등 고급 주거수요를 제외하고는 중대형에 대한 실수요자들의 선호도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재찬 김현길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