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법안 하원통과 들여다 보니 ‘정치적 합의’ 양원제 시스템 산물
입력 2010-03-24 00:17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법안 처리 과정을 살펴보면 양원제(兩院制)를 채택한 의회 시스템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복잡한 절차지만 최대한 정치적 합의에 접근하는 과정이다. 단원제(單院制)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양원제는 각기 독립한 두 합의체로 구성돼 있어 양자의 의사가 일치하는 경우에 의회의 의사로 간주하는 제도다. 따라서 상·하원이 의견을 달리할 땐 조정을 통해 단일안을 도출한다.
하원은 지난해 11월 7일, 상원은 12월 24일 각각 내용이 다른 건보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 사항이었던 퍼블릭 옵션(public option·공공보험) 조항이 하원안에는 포함됐지만, 상원안에선 삭제됐다.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는 민주·공화당이 동수로 참여하는 상·하원 조정위원회에서 단일안을 도출한 뒤 또다시 상원과 하원이 각각 이를 통과시켜 백악관으로 이송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워낙 양당이 대립해 조정위 구성조차 하지 못했다.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이 과정을 피해갔다. 아예 상원안을 단일안으로 간주한 것이다. 상원안은 공화당이 가장 반대했던 퍼블릭 옵션 조항이 빠졌으니, 하원안보다는 양당 의견이 근접한 내용이다. 하원이 이 단일안을 지난 21일 통과시킨 것이다.
올해 초 상·하원 단일안 도출이 어렵다는 전망에 ‘상원안을 단일안으로 간주해 처리’하는 시나리오가 나왔고, 미 언론들은 그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우리가 거수기냐’며 하원이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밀어붙였다. 상·하원 지도부는 막후에서 협상을 벌였다. 하원이 상원안에 반발했던 몇몇 조항을 고쳐 수정안을 만들어 단일안과 함께 통과시킨 것이다. 네브래스카주 등 일부 주에 특혜성 예산을 주는 조항을 삭제해 하원의 체면을 다소나마 살려줬다. 이 수정안이 이번주 중 상원 의결을 거치면 ‘최종 수정 단일법’이 된다.
신중한 의안 심사와 다수 정당의 횡포를 방지하고, 정부와 의회 간 대립 조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는 양원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고, 의회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단점도 다시 확인됐다.
미국의 상원은 연방을 구성하는 주(州)를 대표(주당 2명)하며, 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인구수에 비례해 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