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근로자정신대 피해 한국 할머니들 돕는 ‘호쿠리쿠 연락회’ 신야 히로시 사무국장
입력 2010-03-23 18:16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① 근로정신대 징용의 주범 후지코시
‘후지코시 소송’을 기각한 나고야고등재판소의 항소심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근로정신대 출신 재판 당사자 가운데 6명이 지난 7∼19일 일본에 머물렀다. 이들에게 항공료와 숙소, 식사를 제공한 곳은 일본의 한 시민단체. ‘제2차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 연락회’다.
이 단체는 일본 체류 경비뿐 아니라 소송비용을 전부 제공해왔다. 2003년 소송을 시작한 것도 이 단체 덕분이다. 도대체 왜 한국 할머니들을 돕는 걸까. 신야 히로시(63·사진) 호쿠리쿠 연락회 사무국장과 지난 1월 27일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 주변을 둘러보며 인터뷰했다.
왜 일본인이 소송을 지원하느냐고 묻자 신야 사무국장은 일본인 개개인의 전쟁 책임을 언급했다. “근대국가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정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 전쟁범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일본인 각자에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의 책임 회피 논리에도 일격을 가했다. “기업은 국가 명령에 응한 것이어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가 통용되면 국가 산하의 기업과 국민은 모두 노예가 됩니다. 국가가 명령했다고 해서 기업이 어린 소녀를 연행해 강제 노동시킨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호쿠리쿠 연락회 회원은 전국적으로 약 200명이다. 회비는 연 2000엔이다. 단순 합산하면 약 40만엔이지만 실제로는 200만엔가량 모인다. “2000엔보다 더 많이 내는 사람이 많지요. 10만엔, 20만엔씩 보내는 분도 있습니다.”
회원은 공무원과 회사원, 교사, 연구자, 주부 등 평범한 일본인이다. 평균 연령은 약 60세. 학생 등 젊은 세대가 없는 점을 신야 사무국장은 안타까워했다.
한국 할머니들의 소송을 위해 이 단체가 선임한 변호인단도 자원봉사 수준으로 일을 한다. 변호인단은 변호사 15명 정도로 꾸려졌다. 호쿠리쿠 연락회는 연간 20만엔을 변호인단에 준다. “사실 변호사 1명에게 1년에 20만엔을 지불해야 하는데요. 대부분 변호사가 자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비는 거의 할머니들의 일본 방문 경비로 쓰죠.”
호쿠리쿠 연락회는 2002년 3월 설립됐다. 2001년 10월 근로정신대 출신 할머니 7명이 도야마를 찾아 후지코시에 사죄와 피해 보상을 요구한 게 계기가 됐다. ‘호쿠리쿠’는 일본 중부지방 중에서도 동해에 접하는 도야마·이시카와·후쿠이현이 있는 지역을 말한다. 목사 두 사람과 재일교포 한 사람이 공동 대표다. 연락회는 소송을 안내하는 홈페이지(www.fitweb.or.jp/∼halmoni)를 운영하고 있다. 매달 소식지도 발간한다.
신야 사무국장은 한국인이 더욱 강하게 일본 정부와 기업을 몰아붙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과거의 추한, 보기 흉한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은 한국 사람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일 겁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80∼90세 고령이 되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줘야 합니다. 물론 우리 일본인은 그 이상의 책임이 있습니다.”
도야마=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