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안무가서 연출가 데뷔 첫 작품 ‘올 댓 재즈’ 서병구씨
입력 2010-03-23 17:39
男과 女, 오해와 갈등…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봄은 춤이로소이다”
안무가 서병구(48)는 자신의 춤이 색깔로는 ‘블랙’이라고 했다. 형형색색의 물감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는 점에서 끌어낸 의미다. ‘명성황후’에서는 한국무용을, ‘내 마음의 풍금’은 마임적인 요소를 강하게 채색했다. ‘요덕스토리’는 현대무용의 요소를 강조했다. 이밖에도 ‘미녀는 괴로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페임’ ‘지하철 1호선’ 등 그는 색깔이 다른 작품에서 탁월한 안무를 창조했다. 한국무용부터 모던 재즈까지 장르는 달랐지만 관객들은 그 안에서 서병구를 찾을 수 있었다. 작품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변화할 수 있는 건 그의 춤이 ‘화려한 블랙’이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안무가로 명성을 구축해온 그가 ‘올 댓 재즈’로 연출에 도전했다. 최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그는 “첫 연출 작품이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올 댓 재즈’는 춤에 방점을 찍은 뮤지컬이다. 그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감 있게 연출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때 사랑했던 남녀, 남자는 미국으로 떠나 최고의 안무가가 되고, 여자는 방송사 PD가 되어 그를 인터뷰 하러 미국으로 간다. 오해와 갈등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사랑이야기가 이 작품의 큰 줄기다. 서 연출은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올 댓 재즈’는 춤과 음악으로 볼거리를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올 댓 재즈’를 “밥 포시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안무가 겸 뮤지컬 연출가인 포시는 ‘시카고’ ‘파자마게임’ ‘댄싱’ ‘올 댓 재즈’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인물이다. 박자에 맞춰 엄지와 중지를 튕겨 소리내기, 챙이 길고 끝이 둥글게 올라간 중절모, 어깨돌리기, 엉덩이 흔들기, 엉덩이 보이면서 퇴장하기, 점잔빼며 걷는 걸음걸이, 흰 장갑과 한쪽 손만을 사용한 제스처 등은 포시 스타일로 불리며 많은 뮤지컬에서 차용되고 있다.
서 연출은 “현대무용, 재즈, 힙합, 탱고 등이 들어가 있다. 포시 스타일을 차용한 것도 있지만 내 스타일도 섞여있다”면서 “음악과 대본만 도움을 받았을 뿐 춤, 무대 세트, 조명, 메이크업, 의상 등은 모두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그가 포시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당시 유일하게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던 주한미군방송(AFKN)을 통해 ‘라이자 미넬리쇼’ ‘잭슨 파이브 쇼’ 등을 봤다. “어느 날 ‘라이자 미넬리쇼’ 특집을 보는데 손 하나, 발 하나, 관절만 움직이는데도 너무 근사한 춤이 되는 걸 봤다. 그때는 포시가 안무했는지도 몰랐는데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잊혀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살 때부터 큰어머니 손에 이끌려 한국무용을 접한 그는 경희대 무용학과에 들어가 한국무용을 배우고 대학원에서는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포시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포시를 비롯해 ‘컨택트’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수잔 스트로만 등 안무가 출신 연출가는 다른 분야에서 도전하는 경우보다 성공확률이 높은 편이다. 서 연출은 “안무가는 무대를 시각화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무대 미술 전환이나 유기적인 공간 분할 등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런 점은 다들 높게 평가하시더라고요. 대신 배우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서 작품에 녹아들게 할지에 대한 노하우는 아직 부족한 거 같습니다.” 연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이 작품은 안무가의 이야기라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 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 지, 비주얼적인 것에 컨셉트를 맞췄어요.”
그의 연출 변신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만족하는 만큼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불황이라서 아무래도 큰 작품에 사람이 쏠리는 거 같다”고 말하는 서 연출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올 댓 재즈’를 본 관객의 만족도가 높고 뮤지컬 관계자들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벌써 3개 정도 작품의 연출 제의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안무가로서의 활동도 계속할 계획이다. 당장 5월 선보이는 ‘태양의 노래’의 안무도 짜야 한다. “굉장히 서정적인 작품이에요. 바닷가에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기인데 서핑보드를 가지고 안무를 짜야 해요. 서핑보드를 타는 움직임을 어떻게 안무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