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과 굴곡… UAE의 두얼굴
입력 2010-03-22 21:22
한국 업체 수주 쾌거 루와이스… 불볕더위 공사장 기계소리 힘차고
‘아부다비 드림(Dream).’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코리안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이곳에서 해외플랜트 수주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반면 ‘사막의 기적’으로 불렸던 두바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은 절망의 땅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통해 본 UAE의 빛과 그림자는 뚜렷했다.
◇한국이 접수한 ‘축복의 땅’ 루와이스=‘신이 내린 축복의 땅’으로 불리는 루와이스.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50㎞, 지난해 말 우리나라가 원전을 수주한 실라 지역에서 100㎞ 떨어진 곳이다.
지난 17일 오후 루와이스 국가산업공단 검문소. 국가 1급 보안시설로 사진촬영은 물론이고 카메라, 카메라폰 반입 등은 일절 금지다. 깐깐한 몸수색을 통과해 다시 차를 타고 5분여를 들어가자 웅장한 규모의 공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GS건설이 건설 중인 그린 디젤 프로젝트(GDP) 공사 현장. GDP는 기존 정유공장에서 배출된 디젤(경유)에서 유황 성분을 10ppm 이하로 낮춰 생산하는, 즉 친환경 디젤을 만드는 시설이다.
GS건설은 2007년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의 자회사인 타크리어(Takreer)로부터 수주에 성공, 2008년부터 공사를 진행 중이다.
총 공사비 11억4000만 달러를 투입, 42개월의 공기를 거쳐 내년 7월쯤 시운전을 목표로 현재 63%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단지로 들어서자 지름 70m짜리 원통형 탱크 4∼5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료와 제품을 저장하는 창고다.
단지 중앙으로는 증유타워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곳곳에는 미로처럼 얽힌 파이프라인이 정교하게 짜 맞춰져 있었다. 공사장에 투입되는 자재 규모도 방대했다.
콘크리트는 아파트 863가구(109㎡)를 지을 수 있는 5만2500㎥가 사용됐고, 철골 물량은 8480t으로 서울 중앙우체국 건설 물량의 1.4배다.
희뿌연 사막의 모래바람이 수시로 몰아치지만 고글과 마스크, 안전모로 꽁꽁 중무장한 근로자들은 꿈적하지 않은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GS건설 직원 100여명과 협력업체, 인도와 네팔 등 제3국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 6000여명이 평균 기온 40∼50도를 오르내리는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GDP 현장 총 책임자인 안국기 GS건설 상무는 “지금까지 무사고를 기록 중”이라며 “우수한 현장관리 노하우는 아부다비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GS건설은 루와이스 GDP 공사 수주 쾌거에 이어 지난해 타크리어가 발주한 100억 달러 규모의 루와이스 정유정제 시설공사에서 31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2’ 프로젝트를 따냈다. 국내 업체가 단독 수주한 해외플랜트 공사 중 가장 큰 규모다.
나머지 수주도 SK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싹쓸이하면서 루와이스는 한국 기업에 말 그대로 ‘축복의 땅’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 먹구름 여전한 두바이… 외국인 투자·인구 곤두박질치고
◇기로에 선 두바이, 어디로 가나=같은 날 오후 7시30분. 두바이 시내를 가로지르는 쉐이크 자이드로드 양쪽에 펼쳐진 초고층 고급 레지던스 빌딩에는 띄엄띄엄 불이 켜져 있었다. 완공된 지 1년이 넘은 빌딩도 건물의 절반 가까이가 불 꺼진 곳이었다.
현지에서 11년째 거주하는 메이플라워 여행사 김영철 부장은 “퇴근시간대에도 불 꺼진 집이 상당수이고 초고층 빌딩의 공실률은 70∼80%에 달한다”며 “두바이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년여 동안 두바이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두바이 최대 국영회사인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 이후 두바이 경제는 여전히 먹구름을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 역력했다.
축구장 40개를 합한 면적인 세계 최대 쇼핑몰인 두바이몰. 인파로 제법 북적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1년반 전에 비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두바이몰 옆에 우뚝 솟아 있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지난 1월 개장했지만 외부인 진입을 막고 전망대 수리와 외부 조경공사 등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지에서는 “자금난 때문에 개장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두바이 최대 명소로 꼽히는 아틀란티스 호텔과 대형 리조트인 메디나 주메이라 역시 관광객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는 게 이곳 상인들 얘기다. 건물공사도 마찬가지. 팜 주메이라 지역의 최고 중심지로 꼽히는 주메이라 빌리지 공사는 기반공사 도중 중단된 채 시멘트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두바이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지표는 현지 도로와 호텔. 2008년 하반기까지 주요 시내도로는 출퇴근 시간대만 되면 교통체증이 심각했지만 1년 전쯤 감쪽같이 사라졌다. 구조조정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두바이를 떠나는, 이른바 ‘두바이 엑소더스’로 거주인구가 30만명이나 줄어든 때문이다.
호텔의 경우 30∼40%씩 할인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5성급 호텔인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트윈룸)은 2008년 초만 해도 700∼800달러였지만 현재 400달러로 떨어졌다.
재기를 위한 몸부림도 엿보인다. 건물공사는 중단된 곳이 많았지만 쉐이크 자이드 도로를 비롯해 아부다비를 잇는 하타 로드 등 두바이 시내·외곽 지역을 관통하는 주요도로 확장 공사는 한창이었다.
또 두바이 관광청(DTMC)이 항공료 면제 등을 내건 ‘어린이 공짜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내용도 현지 신문에서 접할 수 있었다.
신공항 개항(6월)과 세계 최대 테마파크인 두바이랜드 조기 개장(11월)을 앞두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응천 코트라 중동·아프리카 지역본부장은 “UAE의 경제 중심축이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뚜렷한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상 두바이는 향후 2∼3년 동안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바이. 아부다비=글 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