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미공개 기록 입수] 외무성 사료관서 찾아내… “자료없다” 日거짓말 반증

입력 2010-03-22 21:37


국가보훈처가 22일 공개한 안중근 의사의 뤼순 감옥 시절에 관한 자료는 일본이 안 의사와 관련된 자료를 다수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10건에 달하는 이번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견된 것으로 그간 일본이 안 의사 관련 자료가 없다고 해온 발언을 뒤집는 증거들이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15권과 안중근 의사 수감시 증거품 목록, 사형집행보고서, 두 동생의 유해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1910년 3월 27일) 등 10건에 달한다.

◇놀라운 신앙심=1910년 8월 5일 상모교계월보 142호에 실린 ‘이등 공을 죽인 안중근의 신앙’이라는 제목의 글은 안 의사의 신앙심이 대단히 깊었다고 기술했다. 이 글은 안 의사를 변호한 변호사가 안 의사의 깊은 신앙심에 감동한 사연을 담고 있다. 이 변호사가 안 의사 처형 전날 안 의사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라고 인사하자 안 의사는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천국에서 만나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신앙하니까 괜찮지만 귀군은 어떻습니까. 아직 믿고 있지 않으면 생각해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변호사는 놀랐으며 안 의사는 죽음 앞에서 마치 자신의 집에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기록했다.

◇철통경비=1909년 10∼12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4권’은 “하얼빈에서의 살인 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어 모두 독거 구금했다”며 “피고 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또 보고서는 “감옥 내에 임시 법정을 설치했으므로 그들을 수용할 구치감의 사무 및 계호 간수와 임시 법정에 따라붙일 계호자도 선정해 심문 사항의 비밀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뤼순 감옥에 임시 법정을 설치했다는 것은 안 의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제는 시간을 끌 경우 국제적 파장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신속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1910년 1∼3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5권’은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 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 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를 시켰다”고 강조했다.

◇사형집행 기록=이 기록은 1910년 1∼3월 정황을 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것으로 ‘1910년 3월 2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 검찰관에 대하여 아래 자에 대한 사형집행을 명함’으로 기록돼 있다. 안 의사의 주소는 한국 평안도 진남포, 직업은 무직, 이름은 안응칠 안중근으로 쓰여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나이는 33세, 죄명은 살인, 형명은 사형, 판결 언도는 1910년 2월 14일로 명시돼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