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측 “봉투 2개 서랍에 넣었을 가능성” 한명숙 “난 저 서랍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입력 2010-03-23 00:21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의 변호인 측과 검찰이 22일 법정에서 총리공관으로 무대를 옮겨 돈봉투 전달 상황을 둘러싸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현장검증이 진행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번 재판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오찬 뒤 5만 달러가 어떻게 전달됐느냐는 것이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며 “일어서면서 숙인 채로 봉투 하나씩 꺼내서 테이블 방향으로 겹치지 않게 의자에 뒀다”고 말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돈봉투를 서랍장에 넣는 장면을 재연했다. 곽 전 사장 역할을 맡은 검사가 오찬이 끝날 무렵 2만, 3만 달러가 든 봉투를 꺼내 의자에 두자, 한 전 총리 역의 다른 검사가 봉투를 챙겨 테이블 뒤에 있던 서랍장에 넣고 뒤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나는 저 서랍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며 검찰 측 재연을 즉각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방 안 서랍장을 열어서 집어넣을 수 있고, 드레스룸에도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를 놓고 가능성을 시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으로부터 2만, 3만 달러를 받아 챙길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도 주요 검증 대상이 됐다. 한 전 총리의 전 수행과장인 강모씨 등이 그동안 재판에서 “한 전 총리가 늦게 나오면 바로 수행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을 챙길 시간이 없다”고 진술한 부분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의 동선을 놓고 초 단위까지 재면서 신경전을 이어갔다.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에게 각각 재연 기회를 준 결과 양측의 시각 차이를 반영하듯 소요시간이 각각 다르게 나왔다. 곽 전 사장의 설명에 따라 검찰과 변호인은 대역을 이용해 돈봉투를 꺼내 의자에 놓는 것과 이를 집어 오찬장에 있는 서랍장에 넣고 현관까지 나가는 것을 재연하며 시간을 측정했다.
우선 변호인단 검증에선 곽 전 사장이 당시 돈봉투를 의자에 놓고 일어서는 장면을 재연했다. 봉투를 놓고 오찬장 밖으로 나오는 데 15초, 현관까지 가는 데 4∼5초가 더 걸렸다. 한 전 총리가 봉투를 집어 서랍장에 넣고 오찬장 밖으로 나와 현관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5초였다. 곽 전 사장이 현관에 도착한 지 25초 후에 도착했다는 것으로, “일행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왔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이 맞지 않다는 취지의 검증이다. 이에 반해 검찰 검증에서는 한 전 총리가 돈을 챙긴 후 현관까지 오는 데 34초가 소요돼 변호인단 검증과 차이를 보였다. 오찬장 밖 소파에서 대기하던 한 전 총리의 수행과장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오찬장까지 걸어가는 데는 5초가 걸렸다.
현장검증은 2006년 12월 20일 오찬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총리실은 현재 집무실로 사용되는 공간을 당시 오찬장으로 재연하기 위해 집기와 가구를 치우고 원형 테이블과 의자, 서랍장 등을 설치했다.
양진영 임성수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