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일제 ‘사형집행명령’ 원본 발굴 공개
입력 2010-03-23 00:18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명령’ 기록 원본이 확인되고, 안 의사에 대한 일본군의 철통같은 경계상황 등을 기록한 계호(戒護:교도소의 치안확보)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또 이 보고서는 김구, 오인석, 이상재 선생 등 거물급 독립운동가들의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행적도 담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22일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 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 15권(1884쪽)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과 보훈처 사료조사팀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지난달 찾아냈다. 이 자료는 최근 기밀 해제된 것이었으나 일본이 공개를 꺼려 자료공개법 등을 활용, 발굴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지 한 달 열흘 만인 3월 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했으며 명령 이틀 만에 집행됐다. 또 일제는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한 안 의사와 관련자 9명을 감시하기 위해 야간 경계 간수를 6명에서 8명으로 늘리고 법원 출두시 압송마차를 사용하는 등 초특급 경계를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자료에는 안 의사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228명에 대한 기록도 있으며 그 가운데 89명은 처음 알려진 인물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자료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일부가 밝혀져 활발했던 1920년대 독립운동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1922년 3월 23일 작성된 ‘상하이 임정 북만 불영선인단 연락’ 부분에 따르면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경무국장이던 김구 선생은 만주와 시베리아 방면 독립운동가들에게 일본 관리의 내정을 정탐하고 친일 조선인 암살 지령을 내렸다. 그간 1919년까지의 활동만 확인되고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은 뒤 불구의 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오인석 선생의 체포 당시 상황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오 선생은 1922년 4월 14일 상하이행 기선에 승선했다가 체포됐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